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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宗敎]라는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개념일뿐

by 태을핵랑 2020. 5. 17.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개념일뿐

 

종교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883년 정도에 우리사회에 나타난 개념이다.

그것도 religion이라는 다분히 기독교적 개념을 접했던 일본 학계가 만들어낸 용어로, 이후 조선사회로 유입된 개념일 뿐이다.

 

그 용어로 민족종교를 재단하는 것, 그래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미신(사이비)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곧 '근대=문명=기독교↔보천교=미신=전근대'라는 틀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합되면서,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당시 기독교, 천도교 등 기득권 종교계는 민족종교와의 분리를 통해 제도화된 근대종교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당시 기독교의 입장에서 충분히 확인가능하다.

'보천교만 아니면 우리 기독교를 모든 조선민족에게 선포하는 것이 하룻거리 일로써, 획기적으로 조선에서의 교세를 독점할뻔 하였는데, 보천교는 우리 기독교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며 커다란 악마'라 보고 보천교 박멸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였다고 했다.

 

*[관련영상] 보천교의 독립운동 역사, 탄허스님의 아버지 김홍규 성도가 보천교의 2인자였다

☞https://youtu.be/0uoaeXHDxl0

 

또 식민지 언론과 지식인들도 '근대'를 지향하는 자신들의 열의와 카르텔을 보호받으려 했을 것이다. 마치 오늘날 학계에서 보여지는 '식민사학의 카르텔' 보호처럼 말이다.

민중들은 천도교인지 동학인지 보천교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이는 불교나 타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김형렬이 위봉사에서 활동했던 경우처럼 보천교도와 불교도가 구분되지 않았고, 심지어 기독교인이면서 보천교 활동을 한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민중들은 어떤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방향을 찾아 헤매는 자신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고 민족독립에의 열망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김철수, 『숨겨진 역사 보천교』 중에서-

 

*[참고영상] 동학 농민군 60만,구도자 300만이 일제에 무참하게 무너지고 30년뒤 보천교 600만이 일어났다, 1천만 구도자가 시천주와 태을주를 노래했다ㅣ증산도 도전문화콘서트3회 2부

☞https://youtu.be/bgj17jAh_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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