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코드/환단고기북콘서트

플라톤의 『대화편』-뮤대륙,아틀란티스,인류문명사의 흐름

by 태을핵랑 2018. 6. 22.

플라톤의 대화편』-뮤대륙,아틀란티스,인류문명사의 흐름

 

뮤대륙, 아틀란티스 대륙에서 환국과 현대문명까지

인류 문명사의 총체적인 발전과정

*영상출처: 개벽문화북콘서트STB상생방송 / https://youtu.be/GDRJ8Qaj7HQ 

 

이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인류 문명사의 총체적인 발전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요. 지구에 나타났던 문명은 처음인가...! 처음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지구의 태고문명을 답사한 많은 뛰어난 지성인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제임스 처치워드(James Churchward 1851~1936) 같은 양반이 20세기 초엽에 태고문명을 답사하고 책 하나(태평양에 존재했던 뮤대륙의 비밀 The lost continent of Mu)를 냈는데, 이 사라진 뮤대륙 문명. 지구 문명의 어머니 문명이었다는 거야. 태평양에 있었다. 3만 년에서 5만 년, 7만 년까지 주장하는데 저건 자기가 직접 쓴 거야. 거기 보면, 뮤대륙이 태평양에 아틀란티스는 대서양 문명에 한 1만 년 2천 년 전에 있었다.

 

플라톤 책에도 나오잖아요.

 

어느 날 이 섬 전체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재앙이 몰아닥쳤다. 그로 인해 아틀란티스는 화산 폭발과 해일에 덮인 채 24시간도 못되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플라톤의 대화편-

 

그리고 뮤제국에 원십자 문양이 있었다. 뮤대륙 문명이 자연의 질서가 전환(개벽을 해가지고 물로 들어갈)할 때, 나라의 대왕이 한 마디 한 내용이 전해오는데요.

 

그 잿속에서 새로운 민족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많이 얻는 것보다 많이 주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사실을 잊을 때, 이 같은 재앙은 그들 위에 내려질 것이다.” -마지막 라Ra Mu 대왕의 종말 선언-

 

태고문명(2~3만 년 전 뮤대륙, 12천 년 전 아틀란티스 문명)의 저런 과정을 거쳐서 지구촌의 빙하기가 물러가고, 오늘의 문명의 직계인 약 1만 년, 12,000년 전에 신석기 문명이 나왔다.

제주도 같은 데가 동아시아 신석기 문명에서 가장 오래되었어요. 고산리 유적지. 그러구서 9000~5500년 전에 신석기 문화 가운데서 특히 옥기시대(옥문명),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홍산문화, 5500년 전인데. 지금은 영역과 연대가 확대되어 가지고 확장되어서 4500년에서 한 9000년 까지를 이야길 하고 있어.

컴퓨터로 판 것처럼 된 원을 보세요. 1만 년 전에 동굴에서 슬쩍 하체나 가리구서 야만인처럼 살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이거여.

환국의 문명이 6천 년 전에 자연의 변화로 동서로 크게 나비 두 날개처럼 분화되면서 동방으로 환웅이 백두산 배달국, 서양은 슈메르 사람들이 넘어가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하류 지금의 이라크 남부, 우르에서 도시국가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나서 차축시대(차축시대: Achsenzeit 2,800~1,800년 전)2000~2500년 전후에 동서양의 성자들, 그리고 사상가, 현인들이 대거 출몰했는데 독일의 야스페르스(야스퍼스 Karl Jaspers, 1883~1969)가 차축시대다 정의를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르네상스(15세기) 시대, 산업혁명(18세기) 시대, 그 다음 근세역사의 출발점 후천개벽 선언(19세기)을 하고, 우리가 지난 20세기 정보산업사회를 거쳐가지고,

 

앞으로 이제 여기서 오는 임팩트 존(Impact Zone)이라고 하는 티핑포인트, 터닝포인트, 뭐 여러 가지 술어를 서양 지성인들이 만들어 쓰고 있는데요.

여기서 결정적인 인류 문명의 새로운 희망의 역사시대가 펼쳐진다.

후천개벽! 자연과 문명과 인간이 동시에 총체적으로 완성되는 개벽이 온다.

인류의 진정한 유토피아 시대가 온다는 거예요.

 

동서 인류 문명사의 큰 흐름

 

태고문명(2~3만년전) 뮤대륙태고문명(12천년전) 아틸란티스 문명신석기(1만년전) 문명개벽옥문화시대(8~5천년전)동방배달과 서양수메르(6천년전)차축시대(2천년전) 동서양 성인, 현자 탄생르네상스, 산업혁명후천개벽선언(19세기) 근대사의 출발점정보화 산업사회(20세기) :임팩트존: 후천개벽: 자연, 문명, 인간의 3대 개벽!!!

 

아틀란티스(Atlantis), 잊혀진 제국

 

플라톤의 대화편 책 구성

<변명>, <크리톤>, <파이돈>, <메논>, <향연>, <국가>, <법률>, <테아에테토스>, <티마에오스>, <소피스트>, <파이드로스>, <파르메니데스.>, <고르기아스>, <락헤스> 등등

 

아틀란티스 대륙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티마에오스>(티마이오스)는 원제 Timaios.

 

플라톤의 [대화편] - 아틀란티스를 최초로 언급한 문헌

 

아틀란티스의 존재와 멸망에 관해서 플라톤은 그의 저서 <티마이어스>, <크리키어스>에서 아틀란티스에 대해 아래 내용과 같이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존재 가능성이 높다.)

 

일찍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랄타 해협) 서쪽에 하나의 섬이 있었는데 이 섬은 리비아(북아프리카)와 아시아(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그 섬에서는 다른 섬으로 건너 갈 수가 있었고 그 섬들을 통해 대서양을 에워싸는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 섬은 아틀란티스라고 불리웠는데 이 섬은 주변의 섬들과 리비아, 이집트, 유럽의 티레니아 근처까지 복속시킨 강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다. 이 국가는 헤라클레스 기둥의 안쪽 여러 국가 전부를 복종시키려 하였다.

아테네 군대는 그리스 연합군의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워 침략군을 격퇴시켰다... 그후 격렬한 지진과 홍수가 일어나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아테네 사람들은 땅속으로 가라앉았고 마찬가지로 아틀란티스 섬은 바다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방면의 바다 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대량의 뻘이 차서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며 이는 그 섬의 침하 때문이었다.

이 나라 시조 포세이돈의 장자 아틀라스가 초대의 왕이 된 데서부터 섬 전체와 주변의 바다에도 아틀란티스란 이름이 붙었다. 전성기의 수도는 바다와 이어지는 최대 폭 533 미터의 3중의 환상 운하로 둘러쳐져 있었다.

아틀란티스에는 백, , 적의 돌이 있었으며 이 세 가지 돌을 사용한 얼룩 색을 띤 건조물이 있었다. 왕궁은 중앙 섬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었다. 여기에는 포세이돈과 애인 크레이트를 모신 신전이 황금의 벽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이와 같은 건조물은 금, , 구리, , 상아 등 불꽃처럼 빛나는 이상한 금속 등으로 호화스럽게 장식되어 있었다.

육지로 이어지는 운하의 환상로에는 공원, 학교, 병사, 경마장 등이 있으며 이곳엔 또한 탑과 문이 달린 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큰 부두는 각지에서 모이는 상인들로 밤낮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플라톤이 아틀란티스에 관한 실재적이고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는 이러한 것들을 단지 교육적 용도로 지어냈을까?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9천 년 전에 아주 강력한 고대국가가 있었다. 이 나라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이상 국가였다. 큰 규모의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아틀란티스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직 사라진 섬과 유적들이 수면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배가 향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 후로 플라톤이 언급한 아틀란티스설에 대한 진위 여부를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있어왔다.

 

학문적 과도기에는 어느 대륙이 아틀란티스냐를 놓고 논쟁이 끊이질 않았다. 대서양이나 지중해설이 유력했으나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많았고 실례로 영국은 자신들의 나라가 아틀란티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가장 합당한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도넬리라는 학자는 아틀란티스 대륙이 지금의 대서양 한 가운데라고 주장하였고 근거로 이집트 문명과 마야에 이르는 동서로 이어진 문화전파루트로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동서의 문명이 다르게 발전을 하였지만 두 문명은 아틀란티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대홍수로 가라앉은 문명이 대륙으로 전파되어 동서 문화가 제각기 발전했다는 것이다.

 

★아틀란티스에 대하여

 

아틀란티스 역사

존재 연대 : 기원전 2만 5천 5백년 ∼ 기원전 1만 1천 6백년

플라톤의 [대화편]을 통해 추정을 한 문헌상의 연대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플라톤은 현인 솔론이 한 이야기라며, 솔론이 기원전 6백년 경에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 9 천년 전에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 후를 2천년이라 하여 계산을 하면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6백년(솔론의 이집트 방문)

+ 9천년(이집트에서 말한 아틀란티스 침몰)

+ 2천년(기원후)

= 1만 1천 6백년(아틀란티스 멸망 연대)

그리고 아틀란티스는 가라앉기 전 1만 3천 9백년 동안 왕가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연결을 하면 아틀란티스의 존재 연대가 기원전 2만 5천 5 백년에서 기원전 1만 1천 6백년 경임을 추정할 수 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이 신화를 바탕으로 하듯이 아틀란티스의 역사도 신화에서 시작을 한다. 옛적에 신들은 모든 토지를 구분하여 자기들끼리 분배를 하게 되었다. 이때에 바다와 지진을 관장하는 포세이돈은 아틀란티스를 다스리도록 하사를 받게 되었다. 포세이돈은 그곳에서 클레이토라는 인간의 아내를 얻고 이 사이에서 다섯 쌍의 남자 쌍둥이를 낳았다. 이 중에서 장남인 아틀라스가 왕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본따서 이 땅을 '아틀란티스'라 명명하였다.

아틀란티스는 풍족한 자원과 뛰어난 문명을 바탕으로 매우 번성한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을 숭상하며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던 아틀란티스도 결국은 부패의 길을 걷게 된다. 백성들은 부와 게으름 그리고 사치의 신인 거짓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 아틀란티스인 들은 세계 정복을 위한 전쟁에 나서 다른 섬들에 거대한 함대들을 보내 지중해 연안 정착지들의 주민을 노예로 삼았다.

그러나 이 정복 전쟁이 '아테네 원정 실패'란 결과를 가져와, 이를 계기로 아틀란티스는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결국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인하여, 많은 부귀와 영화, 그리고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아틀란티스 대륙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아틀란티스의 문명

1. 자연 환경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거대한 화산섬이다. 이 섬은 매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장대한 산맥이 존재하고, 온갖 동물들이 번성하는 푸른 벌판, 곳곳에 위치한 천연 온천, 그리고 1년에 2회의 수확을 약속하는 비옥한 토지가 존재했다. 또한 온갖 광물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다. 특히 고대인들이 매우 귀중하게 여긴 전설적인 보석 무지개 빛 '오리하르콘'이 많았다.

2. 인문 환경

1). 정치
열 명의 왕들이 각기 자신이 소유한 도시에 이웃한 영지에서 주민과 법률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아틀란티스의 법률 제도는 포세이돈이 물려준 것으로, 이 법률제도 밑에서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또한 이 법률은 매우 공정하여 만민의 칭송을 받았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왕들의 상호관계 및 지배자로서의 교제는 포세이돈의 신명에 위해서 결정되었다.

2). 경제
아틀란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운하와 항구, 풍부한 자연 환경을 바탕으로 한 해상 무역이 번성하였다. 특히 '오리하르콘'의 수출로 인하여 많은 부를 쌓게 되었다. 또한 연 2회의 수확을 보장하는 비옥한 토지와 생산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갖춘 자급 자족적인 경제 상태였기에 수입에 비해 수출이 훨씬 많게 되어 많은 부를 축적하여 더욱 번성할 수 있었다.

3). 군사
아틀란티스는 전차 1만대, 이두 마차 3만대, 기병, 중무장병, 사궁병, 투창 ,병등의 대군단과 더불어 1천 2백척의 군선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해군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 마리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지니고 있었다. 아틀란티스가 지중해의 국가들을 단 시간에 쉽게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러한 세계 최강의 대군단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4). 신앙
아틀란티스 인들의 신앙의 주체는 그들의 문명의 시조인 바다의 신이며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이었다. 아틀란티스 인들은 도시의 중심에 거대하고 화려한 신전을 건축하여 그들의 신앙의 주체인 포세이돈을 숭배했다.

5). 건축술
아틀란티스인 들은 특히 건축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특히 도시의 설계를 들 수가 있다. 섬 한가운데에 건설된 아틀란티스의 수도는 그 규모와 함께 흑색, 백색, 적색의 돌들을 섞어 건축학적으로 조화 있게 설계한 장엄한 공공 건물들이 돋보였다. 또한 이 도시는 완전한 동심원을 이룬 5개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에 있는 여러 항만들은 거대한 환상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규모와 함께 조형미를 살리는 뛰어난 건축술을 지니고 있었다.

멸망원원에 대하여

아틀란티스를 소멸시킨 지구최대의 재앙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헤르비거의 <얼음의 우주>

지구의 달처럼 우주의 행성은 그 보다 작은 행성이 돌면서 그 곁을 통과할 때 포획한다. 세월이 흘러 그것이 본체와 하나가 되고, 수천 킬로미터까지 접근하면 인력으로 부수어버린다. 지구에 위성이 접근하면인력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력작용으로 적도 지방의 해수가 위로 끌려올라가서 적도 지방은 수몰되고,양극 지방의 물은 말라버린다. 위성의 파편이 지구 위에 떨어지면 그 여파로 바닷물이 극지방으로 밀려가 극은 수몰된다. 기원전 1만년경, 달이 지구에 접근함에 따라 지구표면에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이오늘날의 대재앙의 신화나 전설로 내려오고 있으며, 아틀란티스도 그 중 하나이다.

카넬 브라인의 <아틀란티스의 그림자>

이 사람도 헤르비거의 달의 이론을 따른다. 그리스 신화엔 달이 없던 시대가 등장하고 있으며,남아프리카 부시맨의 전승에는 하늘에 두개의 달이 뜰때 재앙이 일어난다고 했다.중국의 전설에도 천체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유성의 낙하를 암시하는것 같으며 이와 유사한 전설이 세계각지에 있다.

[벨리코프스키]의 <충돌하는 우주>

기원전 15세기경, 목성에서 태어난 혜성이 지구를 스쳐갔고, 이때의 대이변이 <출애급기>의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52년후 같은 혜성이 접근, <욥기>의 태양이 공중에서 정지한 이야기, 바다가 솟아오른 이야기 등이다. 그후 기원전 8세기경 이 혜성의 영향으로 궤도가 변해버린 화성이 갑자기 지구에 접근했으며, 혜성은 지구와 수성사이에 궤도를 정해 금성이 되었다. 혜성이 지구를 지나가면서 불타는 운석이 지표면에 떨어지고, 자전 속도의 변화로 지각이 갈라져 육지가 융기, 함몰한다. 인력작용으로 해수는 몇 킬로미터 높이로 솟았다가 대륙을 덮친다. 영국의 챌린저 1세호가 1872~1876년에 걸쳐 대서양 바닥에 큰 산맥이 있음을 밝혀냈고, 그후에 이 대양의 중앙부 해저에 높은 봉우리, 계곡, 절벽 등이 있음을 밝혀냈고, 용암으로 보이는 암석파편을 발견. 이는 타킬라이트라고 하는데 공기 중의 가벼운 압력에서만 형성가능해 통상기압으로 냉각고체화된 후 해저로가라앉은 것이다.

 

★뮤대륙에 대하여

 

무대륙의 발견

1864년 프랑스 신부 샤를 브라쇠르는 마드리드 왕립역사학회 도서관에서 에스파냐의 중앙아메리카 정복시대의 신부 디에고 데 린다의 <정복전후의 유카탄>을 발견하고, 그 가운데 마야 알파벳을 기반으로 고대 마야의 <트로아노 고사본>을 해독했다. 그리고 거기에 기록된 화산폭발과 재앙에 의해 함몰한 나라의 이름에 해당하는 두개의 마야 그림문자를 보고 MU라 읽었다.

제임스 처치워드

1926년 가을, 전세계 고고학계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이라는 책에서 고고학자들도 들어 보지 못한 무 대륙의 실재를 주장한 것이다.

이 대담한 주장을 한 영국인은, 1868년부터 인도에 머무르면서 원주민들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는 무 대륙에 대해 듣고 필사적으로 그 확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인도의 옛날 사원에서 무 대륙에 관한 사실이 적힌 옛 점토판을 발견하여 그것을 해독했다. 그 결과, 원주민들 사이에 전승된 무 대륙이 상상의 땅이 아니라 실제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문명이 발달했던 대륙이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확신이 서자, 무 대륙의 존재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 50년 동안이나 세계 각지를 떠돌았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방대한 자료와 사진들은 수집하였다. 그리고 미국 뉴욕에 칩거하면서 무 대륙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를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무 대륙』이란 책을 완성하여 고고학계에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신비한 아틀란티스 대륙에 관해 언급한 것을 놓고도 지금까지 명확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고고학계에, 제임스 처치워드의 무 대륙에 관한 주장은 또 다른 짐이었다.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아득한 옛날, 지금의 태평양이 있는 위치에 '무(Mu)'라는 광대한 대륙이 있었다. 그 동쪽 끝은 현재의 이스터 섬, 북쪽 끝은 하와이 제도, 서쪽 끝은 마리아나 제도, 그리고 남쪽 끝은 지금의 쿡 제도에 해당한다. 동서의 길이는 8천 킬로미터, 남북은 5천 킬로미터로 지금의 태평양 면적의 절반 크기다.

이 무 대륙에 인류가 나타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만 년 전의 일이다. 이곳에 살았던 인간은 매우 우수한 민족으로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무 대륙의 인구는 약 6천4백만 명이었고, 열 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머리색, 피부색, 눈의 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각 민족 간에 차별은 없었고, 한 명의 왕 밑에 하나의 정부가 통치하고 있었다. 무 제국 국민은 우수한 학문과 문화를 가졌고, 특히 건축술과 항해술이 고도로 발달해 이었다. 그들은 진취적인 기질이 풍부하여 배를 타고 세계 각처를 떠돌았다. 서쪽으로는 아시아, 유럽, 이집트와 교류했고, 동쪽으로는 북아메리카 중부에서 남아메리카 북부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자신들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무 대륙에는 낮은 동산 이외에는 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는데, 땅 전체는 세 개의 좁은 해협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문화의 중심지였던 일곱 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격자 모양을 이루며 도시와 마을을 연결하였고, 그 표면은 대리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석조 궁전과 신전과 호화로운 대저택들이 관청을 에워싸고 있었다. 항구마다 세계 각지로 떠나는 배로 분주 했으며, 세계 각지에서 진귀한 물건을 가득 싣고 온 수십 척의 배기 항구로 들어왔다. 태양을 숭배하교 세계를 지배했던 무 제국은 날로 번영했다. 왕권은 튼튼했으며, 모든 국민은 행복한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거대한 대륙은 발밑으로 다가오는 불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대지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신전에 몰려들어 태양신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대지가 갈라지며 지옥의 불길 같은 거대한 불기둥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 첫 번째 대지진으로 무 대륙 남쪽을 대부분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산보다 더 큰 해일이 대륙 남쪽을 강타하고, 용암이 들끓었다.

무 대륙의 국민들이 일차 대지진의 공포를 잊고 폐허 위에 신전을 재건할 무렵, 다시 땅이 요동을 치고 바다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대지는 바가 위에서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대륙의 중앙에 굉음이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무 대륙은 조각조각 갈라지며 바다 밑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거대한 무 대륙이 바다 속으로 잠기자, 전무후무한 해일이 지구 곳곳을 덮쳤다. 지금으로부터 1만 5천 년 전, 지구가 생긴 이래 최초이자 최대의 문명을 건설했던 무 대륙은 이렇게 사라졌다.

나칼 비문

얼핏 들으면 신화 같은 무 대륙에 관한 처치워드의 이러한 주장은 그가 머릿속으로 상상하여 꾸며 낸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가 이런 대담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도의 낡은 힌두교 사원에서 입수한 두 개의 점토판 덕택이었다.

두 개의 점토판에는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도형과 기호 같은 것이 빽빽이 새겨져 있었다. 늙은 고승은 점토판이 신비한 모국(母國)인 무에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가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노승은 처치워드를 토굴 속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1만여 년이라는 세월에 부식된 점토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 점토판들을 보자기에 소중히 싸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점토판에 새겨진 고대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전념했다. 해독은 군대에서의 암호 풀기와 같았다. 그는 고승의 도움을 박아 2년 동안 점토판 해석에 매달렸고, 마침내 상형 문자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점토판은 무 대륙의 성정인 '거룩한 영감의 책'이었는데, 무 대륙의 건국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점토판에 새겨진 무 대륙의 건국 설화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와 비슷했다. 그는 이렇게 추측했다. 무 대륙은 왕성한 해상 활동을 했으며 인도와 이집트, 그리고 시나이 반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모세는 우연히 이것을 입수해 석판에 다시 새겼을 것이다.

처치워드는 인도의 고사원에서 입수한 점토판을 '나칼 비문'이라 명명하고, 자심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다른 고대 점토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멕시코의 광물학자 윌리엄 니벤이 고대의 석판을 수천장 수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멕시코 석판이 나칼 비문보다 1만 년 후에 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처치워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무 대륙은 인류의 어머니 나라가 된다. 처치워드의 책이 세상에 나오자 고고학자나 지질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한마디로 몰아부쳤다. 그는 과학자들의 냉소에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음의 몇 가지를 들고 잇다.

우선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서 발견한 나칼 점토판의 해석이다

'라마야나'에 '동방의 미지의 땅에서 미얀마로 온 것'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동방은 바로 태평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트로아노 고사본'은 유카탄 반도와 고대 마야족에 대한 기록인데, 여기에도 무 대륙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인도나 미얀마, 이집트에서 발굴된 상형 문자는 모두 나칼 점토판에 새겨져 잇는 무 제국의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직접적인 기록 말고도 무 대륙이 실재했다는 증거는 세계각지에 흩어져 있다고 처치워든 주장한다.
이스터, 망가이, 마리아나 제도 등 남태평양의 섬들에 남아 있는 온갖 유적에서 무 대륙의 자취가 발견되고 있고, 유카탄 반도의 우슈말 사원 비문에 새겨진'서방의 나라, 우리는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표현도 그 증거의 하나다. 멕시코시티 남쪽에 있는 피라미드의 비문에는 '어머니 나라의 붕괴를 기념해 세웠다'라는 구절이 있다.

무 대륙의 함몰

이 거대한 무 대륙은 왜 태평양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는가? 처치워드는, 그 비극적 함몰은 태양신의 노여움이 아니라 태평양을 관통하고 있는 특수한 지질층에 기인하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환태평양 화산대는 태평양 지저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가스실(체임버)로 연결되어 있다. 가스 체임버는 지저의 화산 활동에 의해 땅 속에서 발생하는데, 이 가스는 매우 폭발하기 쉬운 성질을 지니고 있어서 지각을 형성하고 있는 화강암에 벌집과 같은 구멍을 뚫는다. 어떤 계기로 이 가스가 지상으로 빠져 나오면, 다음은 아주 불안정한 공동(空洞)이 되어 간신히 지각을 지탱한다. 만약 이 지탱하는 힘이 약해져 천장이 무너지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땅 속의 공동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무너져 내리며 대함몰이 시작되는 것이다.……무 대륙 아래에 있던 이 가스층은 매우 얕아서, 지표면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가스 체임버가 깊은 지층에 있을 경우, 지표는 가스의 팽창력에 들려지면서도 갈라지지 않고 견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산맥의 형성이다. 그런데 '트로아노 고사본', '코르테시아누스 고사본', '라사 고사본' 등의 옛기록을 보면 무 대륙 최후의 날에 대규모적인 융기가 일어났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두 차례 흔들리며 올려졌다.' '대지는 두 차례 튀어올랐다.'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우선 조그만 가스 체임버가 팽창하면서 주위의 다른 가스 체임버에 충격을 주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가스체임버가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폭발을 일으켜 지표를 갈갈이 찢어 버림으로써 무 대륙은 함몰된 것이다.

그는 무 대륙의 지저에 가스 체임버가 있었다는 증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잇다.
현재 태평양의 곳곳에 산재해 잇는 섬들 사이의 바다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이것은 수많은 가스 체임버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바다 밑이 그렇게 심하게 들쭉날쭉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섬들은 함몰된 대륙의 잔재다. 거대한 가스 체임버의 함몰로 인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섬이 가라앉지 않고 남아 있기란 불가능하다. 그러한 섬들은 가스 체임버와 가스 체임버 사이에 위치해 함몰을 면했을 가능성도 있다. 가스 체임버가 서로 통해 있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섬들의 화산 활동을 보면 분명해진다. 당연히 그러한 섬들에는 깎아지른 듯한 단애와 절벽이 많다. 현재도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많은 섬들은 대규모 화산 활동을 하고 잇다. 이러한 현상은 폴리네시아를 빼고 다른 속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그들 거
대한 분화구는 무 대륙의 함몰이 어떠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이상으로 처치워드가 현재의 태평양이 위치한 자리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무 대륙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의 과학 지식으로 무 대륙의 실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인간의 기술이 수천 미터의 바다 속을 샅샅이 뒤져 세월이 쌓아 놓은 진흙을 걷어 내고 무 대륙의 유물을 건져 올린다면 몰라도!

<라사 기록>

티벳의 라사에 있는 고사원에서 발견된 것으로 1400년전의 점성술의 고사본이다.

페루의 별이 떨어졌을 때 오로지 하늘과 바다만이 남았다. 7개의 도시는 황금의 문, 투명한 신전과 함께 폭풍속의 나뭇잎처럼 떨어져 내렸다. 궁정에서는 불과 연기가 솟구쳤다. 비명과 절규가 온세상을 덮었다. 궁중은 갈곳을 잃고, 사원과 탑으로 모여들었다. 최고의 신관 라무는 군중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이런 사태가 오리란 것을 이미 예언하지 않았던가?" 번쩍이는 보석의상을 입은 남녀들은 흐느끼며 외쳤다. "무여, 우리를 구해주소서" "너희들은 하인과 재물과 함께 죽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재 속에서 새로운 민족이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얻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아름답다는 진실을 잊는 순간, 또 다른 재앙이 그들 머리 위에 퍼부어질 것이다!" 불꽃과 연기가 무의 말을 지워갔다. 국토의 주민들은 갈가리 찢겨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트로아노 고사본>

드레스덴 고사본, 페레시아누스 고사본, 코르테시아노 고사본과 함께 남은 고대마야의 고사본.점성술책

칸6년, 11물크, 삭의 달에 무서운 지진이 시작되어, 13투엔까지 계속되었다. 흙언덕의 나라, 무의 국토는 가라앉을 운명에 처했다. 대지는 두번 솟아올랐고, 또 가라앉았다. 땅이 갈라지고 열개의 나라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렇게 6400만의 주민은 사라졌다. 이 책을 편찬하는 지금으로부터 8060년전의 일이다

2004.03.02. 19:53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되는 고급정보-서적, 자료 무료 증정무료 대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잘 살펴보신 후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