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메뚜기떼 출현과 호주 산불은 이상기후 영향?
서울 10배 면적 휩쓴 메뚜기떼..데워진 인도양이 불러왔다
김정연 입력 2020.02.16. 05:01 수정 2020.02.16. 07:17
지난달 16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 산불을 피해 도망쳐나온 코알라가 도로에서 빗물을 핥고 있는 모습. [REUTERS=연합뉴스]
지난해 9월 시작해 5개월 넘게 계속된 호주 산불이 드디어 끝났다.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산불방재청은 14일 “이번 산불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불을 끝낸 폭우가 홍수를 일으키면서 호주 곳곳이 비 피해를 겪고 있다.
다른 남반구 지역도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양 건너 아프리카는 이례적인 강우로 인해 메뚜기떼로 뒤덮였고, 남극의 기온은 20도(℃)를 넘겼다. 올해 남반구의 여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반도 면적 태운 산불
지난달 25일 산불이 계속해서 타고 있는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 주 위성사진. [사진 NASA]
반 년이나 이어진 산불이 호주 전역에 남긴 피해는 엄청나다. 호주 전체에서 1100만㏊, 11만 ㎢의 숲이 사라졌다. 남한(10만㎢)보다 더 넓은 면적이다. 건물 6500개가 타고, 33명이 숨졌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호주 산불이 꺼진 데에는 지난 6일부터 뉴사우스웨일스주가 있는 남동부에 폭우가 쏟아진 덕이 컸다. 24시간 동안 최소 200㎜, 많은 곳은 500~700㎜의 비가 내리면서 대부분 지역에서 잡히지 않던 불길이 사그라졌다.
이번 산불이 끝난 건 비 덕분이지만, 최근 몇십년 간 볼 수 없었던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남동부는 또다시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늦여름인 남반구에선 사이클론(우리나라의 태풍 격)도 발달하고 있어, 피해가 당분간은 이어질 전망이다.
굶주린 아프리카, 식량 뺏는 메뚜기 떼
지난달 24일 케냐 키투이 지역에서 한 농부의 아들이 작물에 내려앉은 메뚜기를 쫓는 모습. 케냐, 소말리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은 지난 수십년간 보지 못한 규모의 메뚜기떼 습격으로 농작물이 다 망가져 식량 수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AP=연합뉴스]
호주가 불에 타는 동안, 호주와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은 메뚜기떼에 뒤덮였다.
지난해 12월 등장한 대규모 메뚜기 떼가 아프리카 동북부를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한때 길이 60㎞, 폭 40㎞ 면적을 뒤덮을 만큼 ‘재앙급’ 규모로, 몇십년 간 유례가 없던 현상이다.
1㎢ 면적 메뚜기 떼가 하루에 3만 5000명분의 식량을 먹어치우는데, 지금까지 동아프리카 내에서 서울 면적의 10배인 5000㎢를 휩쓸었다.
이번 메뚜기떼 창궐은 지난해 소말리아 지역의 이례적 강우 때문으로 추정된다. 소말리아의 우기(Deyr)인 지난해 10~12월에 북동쪽 지역을 중심으로 평년보다 많은 10~50㎜의 비가 내렸다. 덕분에 작물은 잘 자랐지만, 메뚜기떼가 먹어치울 식량도 그만큼 많아졌다.
지난달 29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급기야 “에티오피아·케냐·소말리아는 이미 1200만명이 식량 위기에 처했고, 2월 초 메뚜기가 알을 까면 4월이 지나며 무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박멸에 최소 7000만 달러(약 828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신기하게도 호주 산불과 아프리카 메뚜기 떼는 똑같은 이유에서 생겨났다. 인도 아래, 아프리카와 호주 사이에 있는 넓은 바다인 ‘인도양’이다.
지난해 인도양의 서쪽 수온은 평년보다 1~2도 높았고, 인도양 동쪽의 수온은 1~2도 낮았다. 한 바다에서 양쪽의 수온 차이가 최대 4도까지 벌어진 이 현상을 '인도양 쌍극'이 발생했다고 부르는데 양쪽의 격차가 심할수록 불안정성이 커진다.
최고기온, 최저강수 기록 깬 호주
지난해 10-12월 호주 평균기온 평년 편차. 호주대륙 대부분이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했고, 일부 지역은 5~6도가 높기도 했다. [자료 호주기상청]
물이 따뜻한 인도양 서쪽은 저기압이 만들어지고, 바다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 들어가 구름을 만들면서 아프리카 대륙에는 많은 비가 내리게 된다.
반대로 수온이 낮은 인도양 동쪽의 호주 대륙은 습기 없이 건조한 바람만 부는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햇볕이 내리쬐면서 기온은 더 올라, 호주는 지난해 기록적으로 건조하고 뜨거운 해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18일 호주 전 지역 평균온도는 41.9도를 기록해 기존 최고기록인 40.3도(2013년 1월 7일)를 깼다. 봄철인 9~12월에는 강수량이 최근 120년 중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가뭄을 겪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대륙, 남극도 나날이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6일 아르헨티나 기상청은 남극 북서쪽 끝 에스페란자 기지에서 역대 남극 측정값 최고치인 18.3도를 기록했다고 세계기상기구에 보고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사흘이 지난 9일 브라질 기상청은 남극대륙 시모어 섬(Seymour Island)에서 측정한 20.75도를 새롭게 보고했다. 종전 최고기온은 2015년 3월 측정된 17.5도였다.
빙하도 눈에 보일 만큼 뚜렷하게 녹고, 갈라지고 있다. 지난 9일 남극 파인섬의 빙하가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NASA 위성에 포착됐다. 파인섬 빙하가 전반적으로 얇고 약해지면서, 지난해부터 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언제 붕괴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던 조각이다. 이번에 떨어져 나간 B-49 빙산의 크기는 서울 면적의 절반이 넘는다.
파인섬의 빙하는 남극의 빙하 중 가장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 보통 파인섬의 빙하는 4~6년에 한 번씩 큰 조각이 하나 정도 떨어져 나갔는데, 최근엔 해마다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파인섬이 남쪽 빙하를 밀면서 인근 빙하는 점점 더 약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우리나라도 ‘변덕 날씨’ 우려
지난해 10월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강원 강릉에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뒤 경포대 주변 도로가 물에 잠긴 모습.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해마다 오는 태풍도 점점 더 강하고 많이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연합뉴스]
이런 이상기후 현상이 남반구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남의 일인 것은 아니다.
인도양 쌍극이 강했던 해에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여름이 엄청나게 덥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 기상청도 지난해 “인도양이 우리나라 날씨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보다 더 큰 것으로 보이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양의 바닷물 온도는 늘 조금씩 변한다. 인도양 쌍극도 자연적 변화고, 가끔 격차가 커질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강한 인도양 쌍극이 눈에 띄는 일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하고, 지구가 데워지면 이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는 인도양 쌍극이 강했던 것에 더해, 평년보다 기본적으로 수온이 1도 정도 높았다. 현재 겨울인 북반구도 평년보다 수온이 1도 높은 상태다. 따뜻한 바다는 대기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날씨도 뒤죽박죽 변덕스러울 가능성이 크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이유다.
남반구의 험난했던 여름이 지나고, 북반구에는 점점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여름은 무사할 수 있을까?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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