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의 시발 원흉,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
☆(인물탐구) 동학혁명의 시발원흉 고부군수 조병갑
조병갑(趙秉甲 1844~1912) 본관은 양주이며 고종 당시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문신)의 서조카다.
고종 30년(1893년) 전라도 고부 군수가 되어 각종 탐관오리 행적을 일삼았다.
만석보라는 큰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원래 상류에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보가 있음에도 쓸데없이 더 큰 보를 만들었고, 백성들에게 임금도 주지않고 부려먹는가 하면, 만석보를 완성한 후 만석보의 물을 쓰는 데 불필요하고도 과도한 수세를 징수하고, 근처인 태인의 군수를 지낸 아버지의 공적 비각을 세운다고 백성들을 쥐어 짰으며, 백성의 재산을 탐내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워 재산을 뺏는 등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다.
거기에 만석보도 잘못 만들었는지 홍수철마다 침수 피해가 발생해서 원성은 더욱 쌓였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상 이 사람은 만악의 근원이다.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교도들과는 말 그대로 악연의 결정체인데 어느날 조병갑이 모친상을 당하자 부조금으로 2천 냥을 걷어오라고 요구했는데,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이 대표로 나서서 항의하다가 곤장에 맞아 죽었다. 결국 고부의 동학 접주 전봉준을 중심으로 백성들이 봉기하여 동학농민운동(1894년)이 일어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전봉준 등이 관아를 공격했지만 미리 도망쳤고, 파직되어 고금도로 유배형에 처해졌으나, 1년만에 고종에게 사면을 받았다.
1898년에 4품 법무 민사국장에 임명되고, 몇 달 뒤엔 고등 재판소 판사도 맡는다. 고등 재판소 판사직을 맡은 지 한 달 뒤인 1898년 5월 30일, 동학농민운동을 지지하고 참여한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에게 직접 사형 판결을 내렸다.
※자료출처: 다음 나무위키자료 인용
구한말 조선 조정은 썩을대로 썩고 매관매직에 탐관오리의 횡포와 수탈로 발생한 동학농민 혁명의 발단이된 사건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세금수탈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학농민 혁명이 발발이 되었고 이것을 막기위해 청나라와 일본군이 개입되어 청일 전쟁이 발화되고 청나라 패배후 일본의 내정간섭과 그후 러일전쟁과 한일합방의 치욕의 역사가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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