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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347

'독도'는 한국땅 증명하는 시마네현 통계서 '독도'는 한국땅 증명하는 시마네현 통계서 '독도' 빠진 시마네현 통계서 발굴.."日고유영토론 반박 자료" 입력 2017.10.20. 16:36 댓글 324개 한철호 동국대 교수 "시마네현, 1906년 이후 독도 편입 명확해져" 시마네현통계서 1877년판의 위도 부분. 붉은색 선 안에 북단이 '36도 35분'이라고 기재돼 있다. 독도는 북위 37도 14분이다. 시마네현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료다. [한철호 교수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담은 일본 시마네(島根)현 공식 통계 문서가 발굴됐다. 이 자료를 통해 일본 정부가 1905년 2월 각의 결정으로 "죽도(竹島·독도의 일본명)를 영유한 의사를 재확인했.. 2017. 10. 23.
한국의 성씨/ 복卜씨 한국의 성씨/ 복卜씨 면천沔川 복씨 시조 복지겸 우리나라 복卜씨의 선계先系는 문헌에 의하면 당唐나라의 학사學士 한 사람이 신라 말기에 오계(다섯 왕조에 걸쳐 문란해진 시대를 일컬음)의 난국을 피해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에 건너와 면천沔川에 정착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면천 복씨의 시조인 복지겸卜智謙 장군(초명 사귀沙貴)은 태봉의 마군장군馬軍將軍이었는데 배현경, 홍유, 신숭겸과 더불어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건국(918년)하였다. 그 공로로 태조 왕건에 의해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 대장군大將軍에 봉하여졌다. 그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환선길桓宣吉과 임춘길林春吉 등의 반역 음모를 적발하여 이를 평정시켰다.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정2품, 재상 반열 벼슬)에 이르렀고 혜성부원군槥城府院君(혜성은 면천의 옛 지명).. 2017. 10. 20.
한국의 성씨 / 계桂씨 한국의 성씨 / 계桂씨 수안遂安 계桂씨 시조 계석손桂碩遜 수안 계씨의 시조 계석손桂碩遜은 중국 명나라 천수天水 사람으로 중국 성양태수城陽太守를 지낸 계경횡桂炅橫의 셋째 아들이다. 「수안계씨족보」에 따르면, 계석손은 명나라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내다가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의 명으로 조선에 예학禮學 전수를 위해 파견되었다. 그 후 조선에 귀화하여 수안백遂安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로써 수안 계씨가 창성되었다. 시조 계석손의 아들 4형제 대에서 전국으로 이거하였다. 큰 아들인 계원우桂元祐는 선천宣川으로, 둘째 아들인 계원조桂元祚는 강화江華로, 셋째 아들 계원제桂元禔는 강동江東으로 각각 이주하였다. 이후 16세손 계덕룡桂德龍이 삭주朔州에 터를 잡았고 그 자손은 의주義州까지 퍼져 가서 계씨가 평안도를 중심으.. 2017. 10. 20.
김일제金日磾, 여진 김씨, 신라 김씨, 경순왕 김일제, 여진 김씨, 신라 김씨, 경순왕 김일제金日磾는 누구? 4세기 후반경 훈족(흉노)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대륙에 게르만족 대이동의 물결이 시작됐다. 이때 흉노의 또 다른 이동이 동쪽에도 있었다. 때는 한 무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무제가 흉노를 공략할 때 흉노 좌현왕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왕자는 궁궐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품위 있는 거동과 성실함이 한 무제의 눈에 띄어 무제의 측근이 되었다. 이 흉노 왕자의 이름이 김일제(BCE 134∼BCE 86)이다. 뒤에 무제는 망하라莽何羅의 반란을 막은 공을 치하하여 그를 ‘투후秺侯’로 봉하였다. 투후는 ‘오르도스의 제후’라는 뜻이다. 김일제의 후손 중에서 왕후(전한 11세 원제元帝의 비 효원왕후)도 배출되.. 2017.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