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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동서고금인물4

동학혁명의 시발 원흉,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 동학혁명의 시발 원흉,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 ☆(인물탐구) 동학혁명의 시발원흉 고부군수 조병갑 조병갑(趙秉甲 1844~1912) 본관은 양주이며 고종 당시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문신)의 서조카다. 고종 30년(1893년) 전라도 고부 군수가 되어 각종 탐관오리 행적을 일삼았다. 만석보라는 큰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원래 상류에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보가 있음에도 쓸데없이 더 큰 보를 만들었고, 백성들에게 임금도 주지않고 부려먹는가 하면, 만석보를 완성한 후 만석보의 물을 쓰는 데 불필요하고도 과도한 수세를 징수하고, 근처인 태인의 군수를 지낸 아버지의 공적 비각을 세운다고 백성들을 쥐어 짰으며, 백성의 재산을 탐내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워 재산을 뺏는 등 행동으로 백성들에게 원성을 샀다. 거기에 만석.. 2019. 4. 29.
스티븐 호킹 박사의 별세 그리고 명언과 저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별세 그리고 명언과 저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명언 "제 목표는 간단합니다. 우주에 대한 완벽한 이해, 그리고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 자신을 흥분시켰던 주제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시간의 역사'를 썼습니다. 저의 원래 목표는 공항 서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확실하게 하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그 책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들은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나는 나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차분하게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애도하는 글 “스티븐 호킹.. 2018. 3. 15.
조선을 살린, 해주석씨海州石氏 시조 석성石星 석성(石星, 생몰미상) 석성(중국어: 石星, 생년 미상 ~ 만력 27년(1599년))은 명나라의 문신이다. 자는 공진(拱辰), 호는 동천(東泉). 북직례 동명현(현재의 산둥 성 둥밍 현) 출신. 생애 석성은 1559년 진사(進士)가 되고, 이과급사중(吏科給事中)에 발탁되었다. 만력(萬曆) 초에 재기하여 예부시랑,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지냈다. 예부시랑 당시에는 자신의 부인 류씨를 구해준 역관 홍순언과의 인연으로 조선의 종계변무도 해결해 주었으며 조선에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후 홍순언이 구원병을 청하여 석성은 만력제에게 조선을 구원병을 청하였다.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달래는 것으로서 일본국왕에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실패한 뒤 삭탈관직 및 하옥되어 1599년 옥사하였다.. 2017. 10. 10.
나라를 구한 홍순언洪純彦 나라를 구한 홍순언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순언(純彦.. 2017.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