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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시중2

한국의 성씨 / 위씨魏氏 한국의 성씨 / 위씨魏氏 장흥長興 위魏씨 시조 위경魏鏡 당나라 관서 지방의 홍농弘農사람인 위경魏鏡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이 당나라에 도예지사道藝之士를 청했을 때, 서기 638년(선덕여왕 7) 당나라 한림학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위경은 신라에서 문하습비후門下拾非候·아찬阿飡(신라의 17관등 중 6번째)·상서시중尙書侍中(상서성의 으뜸 벼슬)을 역임하고 고려 때 회주군懷州君(회주는 장흥의 옛 지명)에 추봉해졌기에 후손들이 관향을 장흥으로 하였다. 그러나 문헌을 잃어 세계를 잘 알 수 없자, 고려 초 대각간시중大角干侍中을 지낸 위창주魏菖珠를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우리나라 정사에 나오는 최초의 위씨는 대구화상大矩和尙과 함께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을 엮었다는 신라의 위홍魏弘이다. 그는 오늘날 수.. 2018. 7. 2.
한국의 성씨 / 진주晉州 형씨邢氏 한국의 성씨 / 진주晉州 형씨邢氏 형씨邢氏의 유래 진주 형씨의 시조 형옹邢顒은 당 나라 태종 때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 17년(서기 634년) 영류왕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파견한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진주 형씨 세보 별록’에 따르면 그는 고구려에 들어와 당나라의 문화, 문학, 유교의 보급에 공헌하였다고 하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녹훈됐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정1품 보국輔國 벼슬에 이르렀으며 남양南陽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 후 후손 형방邢昉이 고려 명종 7년(서기 1177년)에 문하시중門下侍中 대광보국大匡輔國을 지냈고, 형공미邢公美가 충렬왕 6년(서기 1280년)에 문하시중으로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왜구를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어 진양군.. 2018.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