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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독립자금 지원2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개념일뿐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일제가 만들어낸 개념일뿐 종교라는 용어는 기껏해야 1883년 정도에 우리사회에 나타난 개념이다. 그것도 religion이라는 다분히 기독교적 개념을 접했던 일본 학계가 만들어낸 용어로, 이후 조선사회로 유입된 개념일 뿐이다. 그 용어로 민족종교를 재단하는 것, 그래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미신(사이비)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선이다. 곧 '근대=문명=기독교↔보천교=미신=전근대'라는 틀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시선은 식민주의적 시선과 연합되면서, 식민권력은 1915년 「포교규칙」을 제정해 보천교를 '종교 유사단체' 곧 '유사종교'로 분류해 버렸다. 당시 기독교, 천도교 등 기득권 종교계는 민족종교와의 분리를 통해 제도화된 근대종교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 2020. 5. 17.
보천교에 "빚을 많이 졌다"고 발언한 백범 김구 선생 보천교에 "빚을 많이 졌다"고 발언한 백범 김구 선생 백범 김구 "상해임정은 보천교에 빚을 많이 졌다" 보천교의 재정간부 김홍규는 불교계의 거목 탄허스님의 선친인데,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거금 10여 만원을 숨기고 있다가 일경에게 발각되어 고문을 당했고, 상해임시정부 간부 라용균 제헌의원은 보천교 간부 임규로부터 5만원의 자금을 건네받아 상해 임정에 전달하였다고 증언했다. "비밀리에 전달되는 독립자금의 특성상 보천교가 실제 얼마만큼의 재정지원을 임정에 했는가는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본 검경 문서나 재판기록에 만주 독립군 요원이 국내에 침투하여 보천교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려다 체포된 사례를 보면 보천교가 해외독립운동에 재정후원을 한 정황은 많습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판.. 201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