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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성3

한국의 성씨 / 남양南陽 홍씨洪氏 한국의 성씨 / 남양南陽 홍씨洪氏 한국의 성씨 / 남양南陽 홍씨洪氏(唐洪 ,土洪) 우리나라 성姓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86년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277성으로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는 250성으로 조사되었고 1960년 조사에서는 258성이었다. 가장 최근의 조사인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86개의 성과 4,17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남양 홍씨는 인구수 약 41만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당홍계가 38만명(379708명, 22위) 토홍계가 3만명으로 추산된다. 그 외 홍씨의 본관은 문헌에 111본까지 나와 있으나 현존하는 본관 중에서 남양南陽, 풍산豊山, 부계缶溪, 홍주洪州 등 4개가 저명하다. 우리나라의 홍씨 홍씨의 기원 홍씨가 .. 2018. 3. 16.
조선을 살린, 해주석씨海州石氏 시조 석성石星 석성(石星, 생몰미상) 석성(중국어: 石星, 생년 미상 ~ 만력 27년(1599년))은 명나라의 문신이다. 자는 공진(拱辰), 호는 동천(東泉). 북직례 동명현(현재의 산둥 성 둥밍 현) 출신. 생애 석성은 1559년 진사(進士)가 되고, 이과급사중(吏科給事中)에 발탁되었다. 만력(萬曆) 초에 재기하여 예부시랑,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지냈다. 예부시랑 당시에는 자신의 부인 류씨를 구해준 역관 홍순언과의 인연으로 조선의 종계변무도 해결해 주었으며 조선에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후 홍순언이 구원병을 청하여 석성은 만력제에게 조선을 구원병을 청하였다.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달래는 것으로서 일본국왕에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실패한 뒤 삭탈관직 및 하옥되어 1599년 옥사하였다.. 2017. 10. 10.
나라를 구한 홍순언洪純彦 나라를 구한 홍순언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순언(純彦.. 2017.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