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여송3

한국의 성씨 | 편片씨 한국의 성씨 | 편片씨 절강浙江 편片씨 시조 편갈송 절강 편씨의 시조인 편갈송片碣頌은 중국 명나라 신종 때 사람으로 자는 경수景修, 호는 모헌慕軒이다. 편갈송에 관한 역사는 조선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이르자 조선 조정에서는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한다. 명나라는 이여송李如松에게 4만 군사를 주어 돕도록 했다. 이때 편갈송은 이여송의 막료로 ‘동정명군총병사東征明軍摠兵使’가 되어 참전해 평양성 공략에 공을 세우고 개선했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는 양호楊鎬 장군의 막료로 ‘제독군문섭병부상서중군제독提督軍門攝兵部尙書中軍都督’이 되어 재출정하여 직산稷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 승첩은 왜적의 서울 공략 야욕을 분쇄하는 중대한 계기였다. 편갈송은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마.. 2017. 10. 20.
조선을 살린, 해주석씨海州石氏 시조 석성石星 석성(石星, 생몰미상) 석성(중국어: 石星, 생년 미상 ~ 만력 27년(1599년))은 명나라의 문신이다. 자는 공진(拱辰), 호는 동천(東泉). 북직례 동명현(현재의 산둥 성 둥밍 현) 출신. 생애 석성은 1559년 진사(進士)가 되고, 이과급사중(吏科給事中)에 발탁되었다. 만력(萬曆) 초에 재기하여 예부시랑,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지냈다. 예부시랑 당시에는 자신의 부인 류씨를 구해준 역관 홍순언과의 인연으로 조선의 종계변무도 해결해 주었으며 조선에서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후 홍순언이 구원병을 청하여 석성은 만력제에게 조선을 구원병을 청하였다.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달래는 것으로서 일본국왕에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실패한 뒤 삭탈관직 및 하옥되어 1599년 옥사하였다.. 2017. 10. 10.
나라를 구한 홍순언洪純彦 나라를 구한 홍순언 홍순언(洪純彦, 1530년 ∼ 1598년)은 조선 중기의 한어 통역관, 외교관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종계변무(宗系辨誣)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구원군 파병에 공을 세웠으며, 종계변무에 세운 공로로 광국공신 2등관(光國功臣二等管)에 책록되었다. 기방에 팔려온 남경의 호부시랑 류모의 딸을 구해준 인연으로 그녀의 남편이자 당시 예부시랑 석성의 전폭적인 신뢰로 종계변무와 임진왜란 시 명나라 군대의 파병을 이끌어냈다. 그의 일화는 정재숭의 동평위공사견문록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옥갑야화 편, 이익의 성호사설 17권 임진재조 등에 부분적으로 전해지다가 1928년 정인보가 그의 행적을 기술한 당릉군유사징을 편찬하여 널리 알려졌다. 초명은 덕룡(德龍), 자(字)는 사준(士俊)·순언(純彦.. 2017.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