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증산도메시지/1.상제님 아세요?

2. 상제님에 대한 인식- <7>상제문화 회복을 주장한 정약용 선생

by 태을핵랑 2017. 7. 7.

2. 상제님에 대한 인식- <7>상제문화 회복을 주장한 정약용 선생 

<7> 상제(上帝)문화의 회복을 주장한 다산 정약용 선생

 

우리 한민족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 상제님과 천지의 뭇 신명들을 섬겨온 민족입니다. 신교(神敎)문화는 '신의 가르침, 하느님의 가르침, 상제님의 가르침을 을 받아 내리는 것'이고, 한민족의 혼이며 고유한 신앙이고 정신문화였던 것입니다.

 

상제(上帝)문화의 회복

 

다산 정약용 선생은 주자학뿐만 아니라 양명학, 노장사상, 불교 및 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들을 집대성하여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방대한 사상체계를 구축하여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전개한 대학자였다. 또한 자신의 학문을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의 착취 속에 고통 받던 조선 민중을 위한 해결책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던 시대의 선구자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한민족의 신교 문화에서 숭배해 온 상제님에 대해서 인식하고, 상제님에 대한 문화를 회복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했던 대학자이며 선구자였습니다. 과연 다산 정약용이라는 대학자를 조선후기의 실학자거중기를 만든 과학자와 같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가 추구했던 학문의 본질적인 의미와 그 깊이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사상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자.

 

상제(上帝)님께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 칭찬하시며 유도의 새 종장(宗長)으로 삼았을 만큼 주희는 불세출의 인물이었으며 또한 그가 유가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나 주희가 너무 위대해서였을까?

주희의 사후 500년이 지나도록 유학은 더 이상의 사상적 발전이나 변화를 추구하지 못한 채 상제(上帝)님의 말씀 그대로 썩고 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러한 주자학의 공소성(空疏性)에서 벗어나 실천 지향적인 학문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중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대목은 바로 다산이 상제문화(上帝文化)’의 회복을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점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개념을 비판하며 인격적 존재로서 상제(上帝)님을 얘기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며,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우주 만물의 근거로서 비인격적인 이()와 기() 대신에 인격적인 천(), 하느님(상제(上帝))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의 이러한 상제관은 저서 곳곳에 드러나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하느님(상제) 과 동일한 존재의 다른 존칭으로 보고 있다. 그는 上帝를 일치시키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의 주재자가 하느님(상제)이다." 하느님(상제)을 하늘()이라고 하는 점은 마치 나랏님()을 나라()라고 호칭하는 경우와 같다.

나라의 나랏님이 계시듯이 하늘의 하느님이 계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세에 "(군주)은 곧 국가이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하늘()이라는 말이 하느님(상제)과 같이 쓸 수 있는 이름이라고 말한 것이다.

 

춘추고징春秋考徵, 上帝者何 是於天地神人之外 造化天地神人萬物之類 而宰制安養之者也

"상제(上帝)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천지신인(天地神人)의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재제안양(宰制安養)하시는 분이다. 상제(上帝)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푸른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上帝)라 하는 것은 아니다."

 

역학서언易學緖言, 一陰一陽之上 明有造化之本

"일음일양 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상제(上帝)님이 계시다."

 

중용자잠中庸自箴, 君子 處暗室之中 戰戰慄慄 不敢爲惡 知其有上帝臨御也

"군자가 어두운 방 가운데 있을 때도 두려워하여 감히 악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상제(上帝)께서 조림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다."

 

성리학에서는 를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존재론적 으로 한정시키고, 그러한 천리(天理)가 인성(人性)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아 수양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을 공경하며 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인간의 현실에서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주재자로서의 상제(上帝)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리학은 점점 공리공담(空理空談)에 빠지게 되었고, 이 고착된 이념의 둑을 무너뜨리기 위해 다산은 간절히 상제(上帝)님을 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산은 아래의 방법으로 상제(上帝)님을 섬길 것을 주장하였다.

지천(知天, 상제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상제님이 내려주신 천명을 깨닫는 것)’.

사천(事天, 상제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섬기는 것)’.

격천(格天, 올바른 예법과 정성으로 상제님께 제사 드리는 것)’.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

 

천지귀신이 빽빽한 나무처럼 늘어선 가운데에서 지극히 존대한 것은 상제(上帝)님일 뿐이다, 하늘의 所以는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데 있으니 항상 人倫에 있다. 고로 인간의 所以修身하여 하늘을 섬기고 人倫을 힘씀에 있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1-23, 중용자잠1-2)

 

귀신의 체에는 형질이 없다.

만물 중에서도 지극히 미소한 것으로서 귀신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천도는 자성이므로 그것이 공용과 조화로 나타날 적에는 지극히 뚜렷한 것이다. (중용자잠)

 

상제(上帝)님의 체 과 질이 없으므로 귀신과 같은 덕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귀신이라 이른 것이다. 감응하여 굽어보는 것으로 말한 까닭에 귀신이라 한 것이다. (중용강의)

 

오직 밝고 밝은 상제님만은 형질이 없으면서도 날마다 곁에 계시면서 굽어보시고 천지를 통괄하시면서 만물의 부모가 되시며 백신의 조종이 되시니,

뚜렷하고 빛나시되 위에 와 계심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점에서 조심조심 뚜렷이 그분을 섬기시니 여기에 교제郊祭(하늘, 땅에 대한 제사)가 일어나게 된 이유가 있다. (춘추고징)

 

옛 사람들은 관심實心으로 하늘을 섬기고 실심으로 을 섬겼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한 생각이 싹틀 때에는

혹 진실하기도 하고, 혹 거짓되기도 하며, 혹 착하기도 하고, 혹 악하기도 하니, 나날이 이곳을 살피고 계신다.’라고 경계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홀로 있음을 삼가 이 진실로 간절하고 독실하여 하늘의 덕에 통하였다. (여유당전서, 중용강의 1-21)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만 되는 고급정보-서적, 자료 무료 증정무료 대여합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서 내용을 잘 살펴보신 후에,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ilsimsycheonzoo/1597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