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성씨/ 광산 김씨
광산光山 김씨
광산光山 김씨는 신라 왕자의 하나로 알려진 김흥광金興光이 광주 지역(광주시 서일동과 담양군 평장동)에 자리 잡으면서 ‘광산’이라는 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본관별 성씨 인구 순위는 김해 김씨·전주 이씨·밀양 박씨·경주 김씨·경주 이씨·경주 최씨·진주 강씨 다음으로 8위에 속하며, 인구는 92만 6천 명이다(2015년 인구센서스, 통계청).
분파와 갈래
신라 말기에 혼란스러운 경주를 피해 무주武州(지금의 광주시)에 터전을 잡은 김흥광은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로 전해진다. 김흥광은 그의 아들 김식金軾이 각간에 오르고, 손자 김길金吉 때에 고려에 귀의하여 무공을 세움으로써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으로 책봉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고려 시대에 대대로 8명의 평장사平章事(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급)를 배출함으로써 ‘평장동’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광산을 본으로 삼은 때는 ‘광산부원군’으로 책봉된 고려 초기 이후로 판단된다.
광산 김씨는 세계를 내려오면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그중 광산 김씨 내에서는 양간공파·낭장공파·문숙공파·문정공파·문원공파·사온직장공파 등 6개 파가 생겨났고, 각 파는 또다시 수많은 지파로 나뉘어졌다. 아예 새로운 성이나 본관을 만들어 나간 파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로 김흥광의 31세손이면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충장공忠壯公 김덕령 장군을 시조로 하는 용안 김씨龍安金氏가 있다.
용안 김씨는 김덕령 장군이 무고로 옥사를 하고 부인도 자결을 하자, 홀로 남은 아들 김광옥金光沃이 전북 익산군 용안면에서 은거하다, 외숙인 이인경의 임지인 평안도에 가서 정착한 데서 유래한다. 현재 인구는 50가구 244명(1985년 인구조사)으로 서울과 부산 등에 거주하고 있다.
그 외 은진恩津 김씨도 있다. 은진 김씨의 시조는 김전개金田槪이다. 그는 광산 김씨 별파인 감찰어공파의 사람으로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판관이 되었다.
「국조방목國朝榜目」에는 그의 본관이 광산이고, 후손들의 분포지는 관서 지방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후손들이 은진(논산시)에서 관서로 이주한 것 같다.
이들은 평안북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는 서울 경기 등에 89가구 532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 시조 김흥광의 14세손 김경량의 아들인 김수金須를 시조로 하는 초계草溪 김씨가 있다. 문과에 급제한 후 영암부사로 간 그는 삼별초군이 제주에 몰려들자 부하들과 제주를 지키려다 전사했다. 그 후손들이 광산 김씨에서 분파한 후 초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충남과 서울, 부산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은 총 189명(1985년 인구조사)으로 파악되었다.
또 다른 분파로 보령保寧 김씨가 있다. 보령 김씨는 중종 때 예조판서를 역임한 김극성金克成을 시조로 하는 파와 김극성 후손으로 병조정랑을 지내고 보령에 정착한 김억적金億積을 1세조로 하는 파가 있다. 1985년 인구조사에서 보령 김씨는 남한에 579가구 247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조선 명종조에 장례원 직장을 지낸 김태진金泰辰을 시조로 하는 남해南海 김씨가 있다. 김태진은 광산 김씨 문숙공하 판도판서공파인 김극신의 증손인데, 연산군의 혼정을 탄핵했다가 관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이후 어찌된 연유인지 몰라도 남해에 정착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경기 김포와 서울 성동구 일원에서 살고 있다. 남해 김씨의 인구는 총 539명(1985년 인구조사)이며, 주로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청거淸渠 김씨가 있다. 청거 김씨의 시조 김승진은 김흥광의 16세손으로 화평군에 봉해진 충숙공 김심의 아들이다. 그는 공민왕 때 상호군을 지내고 광산부원군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광산 김씨에서 분적하여 본관을 청거(진안군 속면)로 정한 것 같다.
그외에도 김남우金南雨을 시조로 하는 무주茂州 김씨, 김천리金天利를 시조로 하는 무풍茂豊 김씨 등도 광산 김씨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구체적인 분적 기록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광산 김씨에서 아예 성씨를 바꾼 성관姓貫도 존재한다. 사씨舍氏가 그들이다. 사씨는 원래 광산 김씨였는데, 10대조 김극윤金克胤이 사씨로 개성하였다고 전한다. 1930년 국세조사 때 처음으로 등장한 사씨는 2000년 조사 때는 23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요 인물
광산 김씨는 김흥광의 10세손인 김체의 아들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의 형제 대에서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김광세의 후손으로는 고려 시대 삼별초의 난 때 순절한 대장군 김경량이 있고, 조선 세조 때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김성원金性源이 있으며, 손자인 김구金絿는 조광조와 함께 혁신 정치를 도모하다 사사된 기묘명현己卯名賢에 속한다. 특히 김구는 필법과 문장에 뛰어났다. 그로 인해 그가 살던 인수방 마을 이름을 딴 인수체仁壽體라는 필체가 생길 정도였다.
김광존의 후손을 보면, 그의 고손자 김진이 대제학에 올랐고, 김정의 아들 김약채金若采 이후 광산 김씨의 화려한 명맥이 이어졌다. 고려 시대의 문신 김정金鼎은 추성보리공신에 책록되고, 벼슬은 중대광重大匡(종1품)에 이르렀고 광성군光城君에 봉군되었으며, 김약채·김약항·김약시 등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특히 김약채는 충청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 자리를 잡아 훗날 기호학맥의 본거를 형성하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 등을 배출하였다.
김장생에서 시작된 기호학파는 영남학파와 견주며, 조선 학맥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사계 김장생의 단일 후손에서는 7명의 대제학이 배출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조선 시대 광산 김씨에서 배출된 인물만 하더라도 정승 5명, 대제학 7명, 왕비 1명(인경왕후)이 있고, 조선 시대에 문과 269명, 무과 7명, 사마시(생원 진사를 뽑는 과거) 275명, 역과(번역관) 15명, 의과 4명, 음양과(천문 지리)에 1명, 율과(잡과 중 하나)에 1명, 주학에 19명 등 58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김진우, 한국인의 역사).
현재도 수많은 인물이 광산 김씨에서 배출되고 있다. 최근 작고한 김수환金壽煥 가톨릭 추기경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외에도 꽃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한 김춘수 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황식 총리 등이 있으며, 김숙희(전 교육부 장관), 김하중(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장수(전 국방부 장관) 등과 김대중(조선일보 전 주필), 김용옥(철학과 교수), 김희수(김안과 병원장, 건양대 초대 총장), 김택수(전 국가대표 탁구선수), 김용건·김아중(영화배우) 등 수많은 인물이 배출되고 있다.
출처: 증산도 월간개벽 http://www.greatop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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