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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한민족 문화코드

[신교문화1] 고구려,백제,신라의 천제문화天祭文化

by 태을핵랑 2018. 6. 15.

[신교문화1] 고구려,백제,신라의 천제문화天祭文化

 

고구려의 강역(최대영토)-동북아 대통일 위업과 다물정신의 실현!

 

*고구려의 천제문화

 

후한서에 기록된 고구려 제천문화

 

 

10월로써 하늘에 제사하고 대회하니 이름하여 동맹이라 한다. 

그 나라 동쪽에 대혈이 있는데 수신이라 부르고, 역시 10월로써 맞아서 제사한다.

 

태백일사에 기록된 고구려 천제문화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 이런 제천 의식은 배달 신시의 옛 풍속이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백제의 천제문화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천제문화

 

서기 2년(시조 온조왕 20년) 봄 2월, “임금께서 큰 제단을 쌓고 친히 천지에 제사를 지내셨다. 이 때 진귀한 새 다섯 마리가 날아왔다.”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백제는 사계절의 가운데 달마다 임금께서 천신天神과 오제五帝에게 천제를 지내셨다.

 

*신라의 천제문화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천제문화

 

 

9년(서기 487) 봄 2월, 내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하였다.내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

 

3월, 사방에 우역郵驛(공문을 전달하 고 마필을 공급하는 곳)을 처음으로 설치하였고,담당관에게 명하여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하였다.

 

7월, 월성月城을 수리하였다. 겨울 10월, 우레가 쳤다.

『( 삼국사기』)

 

 

17년(서기 495) 봄 정월, 임금이 몸소 신궁에 제사 지냈다.

 

가을 8월,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포위하자 백제왕이 구원병을 청하였다.

 

임금이 장군 덕지德智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 고 구원하게 하였다.

 

고구려 병사가 궤멸되자, 백제왕이 사신을 보내 고마움을 표하였다.

 

황룡사 9층 목탑

 

화랑의 원형
신라 화랑의 성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화랑은 본래 종교적, 제사집단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나 점차 군사적 성격으로 변모해 갔다.

 

『화랑세기』에는 화랑이 신궁에서 천신께 제사지내는 제관으로 기록되었다.

 

신궁은 시조신이 아닌 천신을 제사하던 곳이었다.

 

“아국我國 봉신궁奉神宮 행대제우천行大祭于天.”

『화랑세기』

 

“우리나라에서 신궁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를 행했다”고 하여, 신궁의 신격은 하늘(天) 곧 최고신인 천신天神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궁은 천신을 모시고 천제를 지내는 종교적 성소였던 것이다.

 

이는 신라에서 옛 성소였던 소도가 신궁으로 변모했고, 또한 화랑이 정치적 군장과는 분리되어 성소에서 종교적 기능을 담당했던 천군과 동일한 존재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일본의 고대문화와 한민족』, 김철수 저, 상생출판)

 

 

*증산도 공식홈페이지 http://www.js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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