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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메시지/6.인류구원프로그램

[증산도 8관법 천지공사]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by 태을핵랑 2018. 6. 21.

[증산도 8관법 천지공사]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1894년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고 '텐진조약'을 근거로 일본 또한 출병하게 됩니다. 


이때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청과 일본이 맞붙은 전쟁이 청일전쟁(1894.6~1895.4)입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서 요동반도와 타이완 등을 할양받지만, 만주 진출을 꾀한 러시아, 프랑스, 독일 3국의 압박에 못 이겨서 결국 요동반도를 반환하게 됩니다.(3국 간섭) 

일본은 이때부터 러시아와 일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19세기 서양은 한마디로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그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양의 환경관에 영향을 준 사상의 근원은 유대, 그리스도교적 전통으로, 기독교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영국의 경험론자 베이컨(Bacon, R.)은 “자연은 순종한 가운데에 정복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연을 해석해 자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원인과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법칙을 찾아내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컨 이후 자연을 논리학과 인간학의 시각에서 본다든가 자연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배제되고, 기계론적 설명이 강력하게 대두됐다. 


한편, 프랑스의 데카르트(Descartes, R.)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지음으로써 자연 경시와 자연 파괴의 원인을 제공했다. 또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다위니즘(Darwinism)은 사회적 다위니즘으로 발전하면서 산업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공리주의와 결탁하면서 자본주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자연관 변천과정을 보면 점차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즉, 자연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신의 뜻에 부합하는 정당한 행동이라고 믿는 이러한 사상이 오늘날 환경 문제를 발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 고등학교 ‘환경과학’, 교육인적자원부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적 다위니즘 곧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상극 질서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어서 서양 제국주의, 식민지 개척과 정복의 근간이 됩니다.

태상종도사님, 종도사님 도훈 ▷ 선천은 상극의 운


또한 이때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 발달로 공장 생산이 과잉되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와 자본주의 발달을 이루면서 동양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제국주의 경쟁에 뒤늦게 뛰어들게 됩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발트함대(제 2태평양 함대)는 유럽에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남아프리카를 거쳐 지구를 반바퀴를 돌아야하는 3만 km의 대장정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이열 종대로 은밀하게 대마도 해역을 지나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버티고 있는 일본 함대와 마주치게 되고, 양쪽 함대는 모든 화력을 퍼붓는 해전 끝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발트 함대가 전멸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20세기를 여는 전쟁'으로 불렸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자, 러시아는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해 추진했던 남하정책을 포기합니다.


또한 가쓰라-태프트 밀을 통해서 일본은 한반도 지배권을 약속 받고, 결국 을사늑약(1905년)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며 실질적인 지배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는 병든 천지를 바로잡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대신명大神明을 서양으로 보내 큰 난리를 일으켜 선천의 악폐와 상극의 기세를 속히 거두어서 선경세계를 건설하리니 장차 동서양을 비빔밥 비비듯 하리라." [증산도 도전 2편 58장]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발칸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었습니다. 뒤늦게 산업화되며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 3국 동맹을 맺고, 러시아는 프랑스-영국과 3국 협상을 맺으며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이때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도화선이 되어서, 전 유럽이 1차 대전의 포화속으로 빨려들게 됩니다. 

 

 

1차 대전은 사실 아무도 예상 못했고,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제님의 천지공사 그대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면서 아시아 아프리카를 정복하며 식민지 경쟁을 벌였던 서양 제국주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정 러시아는 사회주의화 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무너졌으며 동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쪼개졌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의 끝을 서두르게 한 것은 다름아닌 병이었습니다. 


유럽을 휩쓴 스페인 독감은 1차 대전에서의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5천만명의 희생자를 내며 전쟁을 끝맺게 만들었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병사들을 통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고 맙니다. 

 


 

전후 세계는 국제 평화의 유지를 위해서 국제연맹을 조직하지만, 미국 등이 참가하지 않은 반쪽짜리 국제기구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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