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모든 것을 바꾸라’는 메시지
'모든 것을 바꾸라'는 메시지[동아 시론/최재붕]
입력 2020.04.15. 03:03
코로나19가 열어젖힌 디지털 세상.. 정책 금융 교육 생활.. 격변기 직면
'온라인 新문명' 적응, 생존의 문제.. 세상 개벽했던 구한말을 기억하자
우리는 생존을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신인류의 등장에 따른 문명교체 현상이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사용하는 인류, 즉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가 표준 인류로 등장하면서 인류의 생활공간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한 현상이 혁명의 본질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이 혁명에 규제로 맞서 왔다.
암호화폐는 물론 우버, 에어비앤비, 원격진료 등 기존 생태계에 충격을 줄 만한 모든 플랫폼들을 규제했다. 그래서 정보기술(IT)은 발전했다지만 구시대 문명 기준으로 사는 게 우리 사회 현재 모습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감염 방지를 위한 ‘언택트’ 생활을 하다 보니 강제로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경험하게 됐고, 동시에 어느 문명이 생존에 유리한지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을 비교해 보자.
우리 정부는 매일 보도자료 형식으로 텍스트 기반의 확진자 동향을 발표해 왔다.
그런데 발표 방식은 데이터가 아닌 지면 형식이다. 30년간 유지되어 온 구(舊)문명 표준이다.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늘자 구매 대란이 일어나고 약국마다 줄 서기가 엄청났다. 머리 짜내 고안한 것이 요일제로 구매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전형적인 구문명 방식이다. 소상공인 지원 대출이 시작됐다.
8시간 줄을 서서 복잡한 서류를 제출했는데 5일 걸리는 대출은 복불복이란다.
모든 것이 인쇄된 서류 없으면 안 되는 금융서비스 역시 구문명이다.
이번에는 포노 사피엔스 문명 표준을 확인해 보자.
질병관리본부에서 확진자 위치와 동선이 나오자 우리 대학생들은 밤새 지도 기반 웹 서비스를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했다.
대만의 해커 출신 오드리 탕 디지털부 장관(39)은 마스크 문제 해결을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개발자 그룹에 아이디어를 물어보고 3일 만에 앱을 만들어 ‘줄 서기 없는’ 마스크 구매를 이뤄냈다.
스위스 정부는 긴급대출 상황이 되자 스마트폰으로 대출 신청을 받고 축적했던 신용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불과 20분 만에 어려운 소상공인 통장에 꽂아 주었다. 이것이 포노 사피엔스 문명 표준이다.
이제 기업을 살펴보자.
아마존, 넷플릭스, 쿠팡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더 잘되니 언급할 필요조차 없고 가장 타격을 받고 있는 분야가 소상공인들이다. 소비가 줄고 고객이 오지 않으니 매출이 80% 급감했다. 그런데 피해가 덜한 곳이 있다.
요즘 소비자가 유난히 배달을 많이 시킨다고 생각해서 특별 배달 메뉴를 개발하고 배달 서비스를 운영했던 식당들이다.
특히 공유주방을 써서 오로지 배달로만 승부를 보겠다고 도전한 식당들은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음식배달 금액은 무려 16조 원을 넘었다. 소상공인 생존전략도 신문명에 적응하는 것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지금 언택트 생활로 인해 가장 혼란스러운 곳은 학교다.
부족한 인프라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학생과 교사 간 문명의 눈높이 차이다. 인터넷 일타강사 강의에 이미 익숙한 학생들은 높은 수준의 동영상 강의를 요구하는 반면 전혀 준비가 안 됐던 교사들은 매우 당황하고 있다. 실제로 한 교사 연수기관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60% 이상이 온라인 수업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국회는 그동안 역사교과서 문제, 대학수학능력시험 정시 확대 문제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교육 인프라와 콘텐츠 구축은 관심조차 두질 못했다. 이번 사태로 아이들이 지금의 공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판단할지 두렵다. 수능만 잘 보면 되는 게 어른들이 만든 기준이라면 일타강사가 학교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결국 붕괴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생존하려면 바꿔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생존하려면 마음속 표준 문명을 바꿔야 한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부작용은 슬기롭게 막고 신문명을 받아 혁신의 힘을 길러야 한다.
구한말 양반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되던 혁명기를 기억하자.
역사가 증명하듯 문명교체기는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기회다.
시그널은 명백하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은 성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어렵고 불편하지만 도와가며 신문명에 도전해야 한다.
아이들의 생존과 미래가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음을 가슴에 깊이 새기자.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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