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진 1년, 집 현관에 ‘생존 배낭’… ‘지진 단톡방’으로 실시간 정보공유
집 현관에 ‘생존 배낭’… ‘지진 단톡방’으로 실시간 정보공유
기사입력 2017-09-08 03:02 | 최종수정 2017-09-08 03:29
[동아일보]
[경주지진 1년] 경주 지진 1년, 무엇이 달라졌나
‘안전’이 일상이 된 경주
《 매일 한두 차례 도시가 흔들릴 때마다 시민들의 마음은 불안에 휘청거렸다. 지난해 9월 12일부터 1년간 규모 5.8의 강진과 600회 이상의 여진을 겪은 경북 경주 지역의 일상이다. 전례 없는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경주의 선택은 안전이었다. 시민들은 현관 옆에 생존배낭을 놓고, 흉기로 변할 수 있는 가구까지 바꿨다. 어린이와 어른, 학생과 교사, 기업과 지역사회가 정보를 나누며 불안을 안심으로 바꿔가고 있다. 재난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를 이겨내겠다는 것이다. 》
“지진났을 땐 머리부터 보호해요” 지난해 9월 12일 오후 8시경 경북 경주에선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633회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경주시민에게 지진은 ‘재난’이 아닌 ‘일상’이 됐다. 여진이 있을 때마다 초등학교에서는 훈련하듯 대피하며 대처한다. 흥무초등학교·경주아이쿱생활협동조합 제공
경북 경주시 이영용 씨(51)의 집 현관 안쪽에는 항상 청록색 배낭이 놓여 있다. 가로 50cm, 세로 30cm 크기다. 가방 안에는 생수병과 구급약 여권 손전등 등이 있다. 레저활동 때 쓰는 검은색 헬멧도 들어 있다. 이 씨의 ‘생존 배낭’이다. 이 배낭은 1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씨는 6일 “언제 또 (지진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배낭을 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12일 규모 5.1과 5.8의 지진이 차례로 경주를 덮쳤다. 이어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진이 600회 넘게 계속됐다. 교과서나 영화에서만 보던 재난을 직접 겪은 경주시민들은 여진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공포가 일상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주시민들은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재난을 막는 대신 피해를 막는 생활방식을 터득한 것이다.
○ 재난 대비를 일상으로 여기는 사람들
“지진방재 모자 발명했어요” 지난해 9월 12일 오후 8시경 경북 경주에선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633회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경주시민에게 지진은 ‘재난’이 아닌 ‘일상’이 됐다. 지진방재모자를 발명한 어린이도 있다. 흥무초등학교·경주아이쿱생활협동조합 제공
그날 이후 경주 지역 아이들은 실내화 주머니를 꼭 챙겨 다닌다. 지진 때 낙하물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서다. 실내화 주머니가 머리를 보호해주는 ‘방재 모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5월 열린 경주학생발명품경진대회에는 지진 관련 발명품이 대거 출품됐다. 지진방재 접이식 모자, 지진 대피 실내화 가방, 지진 알리미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경주 A초등학교는 주기적으로 ‘운동장 배식’을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교실이나 식당 등 실내보다 운동장과 공터 같은 실외가 안전해서다. 건물을 지은 지 30년이 넘어 작은 여진이라도 발생하면 천장에서 석면가루가 떨어지는 것도 감안했다. 이 학교 교감은 “여진 발생에 대비한 교육도 되고 혹시 모를 석면가루 걱정 탓에 종종 운동장에서 배식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아이들의 안전한 모습을 촬영해 학부모에게 보내는 게 중요한 하루 일과다. 6일 오후 3시 학부모 최모 씨(43)도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톡방)을 통해 4세 딸아이가 낮잠 자는 장면을 확인했다. 최 씨는 “교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진을 보내줘 솔직히 크게 안심이 된다”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배웠다며 집 근처에서 놀 때 헬멧을 쓰는 습관도 생겼다”고 말했다.
생협매장에 긴급 구호물품 배치 지난해 9월 12일 오후 8시경 경북 경주에선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였다.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633회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경주시민에게 지진은 ‘재난’이 아닌 ‘일상’이 됐다. 황성동 경주아이쿱생활협동조합 매장에는 지진 구호 물품 300인분이 준비돼 있다. 흥무초등학교·경주아이쿱생활협동조합 제공
이날 오후 7시 경주시 황성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약 700가구 규모다. 단지 주변 도로에는 차량들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 대신 지하주차장은 한산했다. 이 역시 그날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상당수 주민은 지하주차장 대신 지상주차장이나 도로에 주차한다. 최모 씨(45)는 “작년 지진 때 지하주차장에 차가 있어 빨리 대피하지 못했다”며 “그래서 1년째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차량에 기름을 가득 넣는 이른바 ‘만땅 주유’ 운전자도 늘었다. 김미정 씨(40·여)도 기름 눈금이 아직 중간에 있지만 굳이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다. 김 씨는 “지난해 대피할 때 차량이 꽉 막힌 상황에서 기름까지 부족해 당황한 적이 있다”며 “그 후로 기름은 항상 가득 넣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집 안의 가구 배치도 바꿨다. 침실 벽에 있는 액자와 시계 그리고 벽걸이형 에어컨을 모두 뗐다. 깨질 만한 건 다 치우고 장롱도 붙박이로 바꿨다. 김 씨는 “자다가 지진이 날 수도 있으니 다칠 게 염려돼 침실은 특히 신경 썼다”며 “그 밖에 깨질 만한 장식품이나 높은 책장은 다 치웠다”고 말했다.
지진 때 나는 굉음 탓에 경주시민은 한동안 ‘소리 공포증’에 시달렸다. 지진 발생 후 한동안 경주시 황남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매일 저녁 “문 닫는 소리, 세탁기 돌리는 소리, 발 구르는 소리 등 층간소음을 조심해 달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어지간한 소음을 견디던 주민들이 지진 후 작은 소음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서다. 주민 안모 씨(48)는 “저녁 때 윗집의 발 구르는 소리나 세탁기 탈수 소리가 들리면 지진 당시 상황이 떠오른다”며 “그래서 이제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소음 발생을 자제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 재난 공부하고, 대응 연습하고
지진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시민들의 모임까지 등장했다. ‘지진단톡방’ ‘지진밴드’ 등을 만들어 규모 작은의 여진 때도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는다. 일본의 애플리케이션까지 스마트폰에 설치해 정보를 구한다.
학부모들은 모여서 ‘지진 스터디’를 한다. 일본에서 나온 재난 대응 매뉴얼을 직접 번역해 돈을 모아 2000부를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1, 2쪽 남짓한 정부 보급 매뉴얼과 달리 엄마들이 만든 손바닥 크기의 매뉴얼은 128쪽에 걸쳐 자세한 재난 대응 요령이 담겨 있다. 학부모들은 매뉴얼이 몸에 밸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읽기모임’을 열고 다음 달 자체 훈련도 시행할 예정이다.
올 1월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한 정미정 씨(45·여)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다. 정 씨는 “유난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재난 체험’을 하는 부모도 많아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생긴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에 초등학생 자녀 두 명과 다녀온 최모 씨(45·여)는 “지진, 화재 등 각종 재난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배울 수 있었다”며 “경주에 사는 학부모에겐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경주=이지훈 easyhoon@donga.com·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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