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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by 태을핵랑 2017. 11. 20.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일제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기사입력 2017-11-20 08:39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 보천교 재발견' 학술대회

 

[오마이뉴스 조우성 기자]

 

한때 600만 신도에 달했던 보천교는 독립운동의 자금줄이며 인적 산실이었다.

어릴 적에 동학접주였던 아버지 차치구를 따라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보천교 교주 차경석은 일제에 의해 '갑종 요시찰인'으로 분류되어 철저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심한 압박속에서도 그는 상해임정과 독립단체들에게 아낌없는 재정.인적 지원을 하였고, 짓밟힌 한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망해버린 나라를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는 항일투쟁과 민족독립,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불태운 시대의 영웅이었다. 조우성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1923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 상해에서 한민족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였다. 국내와 상해, 만주.북경.간도일대 등 각지에서 독립활동을 하는 100여 개의 단체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보천교'에서도 진정원 간부인 배홍길(배치문)과 김종철, 청년회 대표인 강홍렬(강일) 3명을 파견하여 국민대표회의에 참여시켰다.

 

강홍렬(강일)3.1운동 때 영남지역 학생대표로 독립선언문을 비밀리에 합천지역에 배포했고 합천시장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으며, 배홍길(배치문)3.1운동이 일어나자 목포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

두 사람은 국민대표회의가 끝나고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였다.

 

"그들은 의열단에 입단하여 간부로 활동했습니다. 김원봉 단장에게 단원과 군자금모집의 밀명을 받고 국내로 잠입해 활동하였습니다. 강홍렬(강일)과 배홍길(배치문)은 의열단과 보천교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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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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