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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折必東(만절필동)

by 태을핵랑 2017. 12. 18.

[만물상] 萬折必東(만절필동)

김태익 논설위원 입력 2017.12.18. 03:16 수정 2017.12.18. 11:02

 

조선 중엽 정치계를 휘어잡은 송시열은 친명(親明) 중화주의자였다. 일상생활에서도 명나라 복식을 하고 명나라 예법을 따를 정도였다고 한다.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자 중원(中原)의 문화 정통성을 이은 어버이 같은 나라라는 게 그의 인식이었다. 그가 제자들을 모아 가르친 속리산 계곡은 모화(慕華)사상의 요람이자 발신지 같은 곳이었다.

 

1689년 송시열이 죽자 제자들은 이곳에 그를 기리는 서원을 세우고 '화양서원'이라고 이름했다. '화양(華陽)'은 중국 문화가 햇빛처럼 빛난다는 뜻도 된다. 제자들은 또 명나라 황제 신종을 제사 지내기 위한 사당을 짓고 '만동묘(萬東廟)'라고 했다. 만동(萬東)'만절필동(萬折必東)'의 준말로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하나인 순자(荀子)가 쓴 말이다. 중원의 젖줄인 황하(黃河)는 수만 번 물길을 꺾어 흐르지만 결국은 동쪽을 향한다. 중국에선 충신의 절개를 가리키는 이 말이 조선의 중화주의자들에겐 중국 황제를 향한 변함없는 충절을 뜻하게 됐다. 경기도 가평에는 조선 선조 임금의 글씨로 '만절필동'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萬折必東 共創未來(만절필동 공창미래)"라고 쓴 것으로 밝혀졌다. 노 대사는 한·중이 곡절을 겪었지만 결국 좋은 관계를 회복할 것이란 뜻으로 썼을 것으로 믿는다. 실제로 이 말은 사필귀정(事必歸正)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역사에서 쓰인 배경과 맥락을 알면 쉽게 나와선 안 될 말이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일각에선 "의미를 알고 썼다면 국가 독립을 훼손한 것이고 모르고 썼다면 나라 망신"이라는 말도 나온다.

 

노 대사는 부임 전에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피해가 중국의 사드 보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해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이 우리와 이웃한 세계 2위 경제 대국이고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나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치면 미국·일본도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이 땅의 진보·좌파는 무슨 까닭에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에 비유해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에는 겸사(謙辭)도 필요하다지만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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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드보복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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