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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접주3

한국의 성씨 / 밀양密陽 손씨孫氏 한국의 성씨 / 밀양密陽 손씨孫氏 우리나라 성姓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86년 성종 때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277성으로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는 250성으로 조사되었고 1960년 조사에서는 258성이었다. 2000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86개의 성과 4,179개의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최근의 조사인 2015년의 조사에서는 성씨의 개수가 5582개로 크게 늘어났다. 이중 한자로 이루어진 성은 1507개이고, 한자가 없는 성은 4075개나 된다. 본관은 3만6744개로 조사되었다. 이중 밀양 손씨는 인구수가 306,895명이었다. 한편 손씨 전체 인구는 457,303명이었다. 대전 뿌리공원에 있는 밀양 손씨 종탑 손씨의 유래 시조에 얽힌 이야기 삼국.. 2018. 3. 9.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일제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기사입력 2017-11-20 08:39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 보천교 재발견' 학술대회 [오마이뉴스 조우성 기자] ▲ 한때 600만 신도에 달했던 보천교는 독립운동의 자금줄이며 인적 산실이었다. 어릴 적에 동학접주였던 아버지 차치구를 따라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보천교 교주 차경석은 일제에 의해 '갑종 요시찰인'으로 분류되어 철저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심한 압박속에서도 그는 상해임정과 독립단체들에게 아낌없는 재정.인적 지원을 하였고, 짓밟힌 한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망해버린 나라를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는 항일투쟁과 민족독립,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불태운 시대의 영웅이었다. ⓒ.. 2017. 11. 20.
[보천교]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하다 [보천교]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하다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함께 해 보천교 교주 월곡 차경석(1880~1936)이 항일투쟁과 민족독립에 적극적인 것에는 그의 아버지인 차치구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월곡 차경석의 부친 차치구는 전봉준 장군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차치구는 동학접주로 정읍에서 기두하여 혁명에 가담했는데, 동학군이 일군에게 공주전투와 우금치에서 전멸당하고 전봉준 장군이 피노리에 숨었을 때 같이 동행을 했습니다. 차경석의 아버지가 밀고를 당해서 참혹하게 분살형을 당했는데, 차경석의 장녀 차봉수씨의 증언에 의하면 차치구의 몸이 다 타버려서 차경석이 몰래 아버지의 두상만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존경하던 아버지를.. 201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