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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종교정책2

국회 보천교 재발견 학술대회 행사 후기 국회 보천교(독립운동의 메카, 독립운동의 중심지) 재발견 학술대회 행사 후기 [행사 후기] 민족정신의 산실, 독립운동의 메카 보천교 김만섭 기자/ 승인 2017.11.16 17:48 2017년 11월 15일, 자칫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 했던 보천교가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 보천교의 재발견' 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통해 부활의 시간을 맞이했다. 조선총독부 공식 보고 문서와 미 총영사인 밀러의 본국 보고서 상에 신도 수 추산 600만으로 알려졌던 보천교는 그 동안의 오명의 늪에서 다시 깨어나 “민족운동의 산실, 독립운동의 메카”로 우리의 역사 속에 다시 들어왔다.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유성엽의원실(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이 주최, 상생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2018. 1. 29.
보천교 교주 차경석,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 항일운동 지원 보천교 교주 차경석,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 항일운동 지원 차경석, 제주도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 지원 일제는 1917년 4월 24일 차경석을 국권회복을 추구하고 배일사상을 가진 위험한 인물로 생각하여 '갑종 요시찰인물'로 분류하였다.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을 돌다 경상북도 영일군 출신의 김연일 등과 상의하여 1918년 9월 19일 제주도 법정사(法井寺)에 교도 약 30명을 소집하여 "왜놈은 우리 조선을 병합하고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가혹하게 다루니 실로 왜놈은 우리 조선민족의 원수다. 이제 국권을 회복함으로써 교도는 우선 도내 거주의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일본인 상민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1918년 10월 6일 밤 김연일은 신도 33명을 소집하여 인근 각 면.이장들에.. 201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