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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치구3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는 사이비종교로 몰아 강제 해산 원제: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일제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는 독립운동 자금지원과 국권회복운동 등 민족운동에 앞장섰다고 사이비종교로 몰아 강제 해산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 보천교 재발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날 행사로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 잘못 전해진 보천교의 진실과 일제의 만행이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일제는 독립운동 참여, 독립자금 지원, 국권회복운동 등 민족운동을 앞장서서 활동하던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 종교단체로 매도하여 악랄하게 탄압하고 결국은 강제 해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15일 보천교 학술대회는 많은 참석자들의 성원에 힘입.. 2017. 11. 20.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보천교 간부들, 의열단 단원으로 활동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일제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기사입력 2017-11-20 08:39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산실 보천교 재발견' 학술대회 [오마이뉴스 조우성 기자] ▲ 한때 600만 신도에 달했던 보천교는 독립운동의 자금줄이며 인적 산실이었다. 어릴 적에 동학접주였던 아버지 차치구를 따라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보천교 교주 차경석은 일제에 의해 '갑종 요시찰인'으로 분류되어 철저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심한 압박속에서도 그는 상해임정과 독립단체들에게 아낌없는 재정.인적 지원을 하였고, 짓밟힌 한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고 망해버린 나라를 새롭게 재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는 항일투쟁과 민족독립,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불태운 시대의 영웅이었다. ⓒ.. 2017. 11. 20.
[보천교]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하다 [보천교]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하다 차경석과 부친 차치구, 전봉준 장군과 마지막까지 생사를 함께 해 보천교 교주 월곡 차경석(1880~1936)이 항일투쟁과 민족독립에 적극적인 것에는 그의 아버지인 차치구의 죽음이 큰 영향을 미쳤다. "월곡 차경석의 부친 차치구는 전봉준 장군과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차치구는 동학접주로 정읍에서 기두하여 혁명에 가담했는데, 동학군이 일군에게 공주전투와 우금치에서 전멸당하고 전봉준 장군이 피노리에 숨었을 때 같이 동행을 했습니다. 차경석의 아버지가 밀고를 당해서 참혹하게 분살형을 당했는데, 차경석의 장녀 차봉수씨의 증언에 의하면 차치구의 몸이 다 타버려서 차경석이 몰래 아버지의 두상만 가지고 나왔다고 합니다. 존경하던 아버지를.. 2017.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