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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황극경세서 어초문대 [4]

by 태을핵랑 2017. 12. 14.

황극경세서 어초문대 [4]

 

漁樵問對 [4]

 

 

*편의상 대화부분에서 고기잡이는 `漁` , 나무꾼은 `樵`로 표현했음.

 

■ 나무꾼이 고기잡이에게 물었다.

 

樵 :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습니까?

漁 : 저는 여섯 가지 연장으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樵 :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는 것은 하늘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漁 :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어 물고기를 잡는 것은 사람이지만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어 물고기를 잡도록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무꾼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 방법을 물었다.

 

漁 : 여섯 가지 연장이란 낚싯대 · 낚싯줄 · 낚시찌 · 낚싯봉(봉돌) · 낚싯바늘 · 낚싯밥(미끼)입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빠지면 물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섯 가지 연장을 빠짐없이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고도 물고기를 잡지 못할 수는 있지만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지 않고도 물고기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로서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는 것은 사람이지만 물고기를 잡고 잡지 못하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음을 알겠습니다. 여섯 가지 연장을 갖추지 않아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것은 하늘 탓이 아니고 사람 탓입니다.

 

樵 : 귀신에게 기도하여 복福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복福은 기도하여 구할 수 있으며 구한다고 얻을 수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그 연유를 여쭙겠습니다.

漁 : 선善과 악惡을 말하는 것은 사람이고 화禍와 복福은 하늘에 달려 있습니다. 천도天道는 착한 사람에게 복福을 주고 나쁜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데 귀신이 하늘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은 허물은 참으로 피하기 어려운데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없애 달라고 빌 수 있겠습니까? 덕德을 닦고 선善을 쌓는 것은 군자가 늘 하는 것인바 어찌 그 사이에 다른 하찮은 일이 있겠습니까?

 

樵 : 착한 일을 했는데 재앙을 만나고 나쁜 일을 했는데 복福을 받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漁 : 행幸과 불행不幸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幸과 불행不幸은 운명이고 당當과 부당不當은 연분입니다. 운명과 연분에서 사람이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樵 : 무엇을 연분이라 하고 무엇을 운명이라 합니까?

漁 : 소인이 복福을 받는 것은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며, 마땅히 재앙을 당하는 것은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군자는 재앙을 당하는 것은 연분이 아니고 운명이며, 마땅히 복福을 받는 것은 연분이지 운명이 아닙니다.

 

고기잡이가 나무꾼에게 말하였다.

 

漁 : 사람이 이른바 친하다고 하는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른바 소원하다고 하는 것은 길을 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이해利害가 마음에 있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길을 가다 만난 사람보다 더 멀어지게 됩니다. 부자父子의 도리는 천성天性입니다. 이해利害는 오히려 빼앗을 수 있지만 천성天性은 그리할 수 없습니다. 무릇 이해利害가 사람에게 옮겨짐이 이와 같이 심각하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길에 오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고 서로 해害하려는 마음을 전혀 가지지 않는데 이해利害가 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利害가 앞에 있으면 길에 오가는 사람과 부자父子의 사이를 또 어찌 가릴 수 있겠습니까? 길에 오가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사귈 수 있는데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의 친함에 있어서랴! 무릇 의義는 양보의 근본이고 이利는 다툼의 실마리입니다. 사양하면 인仁을 얻게 되고 다투면 해害를 입게 됩니다. 인仁과 해害가 어찌 이다지도 멉니까? 요임금과 순임금도 사람이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도 사람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같지만 인仁과 해害는 다릅니다. 인仁은 의義로 인하여 생기고 해害는 이利로 인하여 생깁니다. 이利를 의義로써 하지 않으면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찌 길에 오가는 사람과 서로 만나 하루 동안 사귀어 길 복판에서 소매를 붙잡는 것과 같겠습니까.

 

樵 : 저는 일찍부터 땔감을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100 근을 짊어지고도 제 몸이 다치지 않는데 여기에 10 근을 보태면 곧바로 제 몸이 다칩니다. 외람되만 그 까닭을 좀 여쭙겠습니다.

漁 : 나무하는 것을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일로 살펴보건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면 모두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낚시로 큰 물고기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물고기와 맞붙어 싸웠는데 낚싯대를 버리고자 하여도 버릴 수 없었고 물고기를 낚아 올리려 하여도 힘에 부쳐 못하였습니다. 종일토록 물고기와 싸운뒤에 잡았습니다. 어찌 물에 빠질 우려가 없었을 것이며 몸이 다칠 우려가 없었겠습니까? 물고기와 땔감은 다르지만 탐욕을 내어 다치는 것은 똑같습니다. 100 근은 힘이 안에서 분담하지만 10 근은 힘이 밖에서 분담합니다. 힘이 밖에서 분담하면 비록 털 하나라도 해害가 될 것인데 하물며 10 근은 어떻겠습니까? 제가 물고기를 탐내는 것이 어찌 당신이 땔감을 탐내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樵 : 저는 오늘 이후에야 힘을 헤아려 움직이는 것이 슬기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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