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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감염병과 싸우며 진화했다, 이번에도 그럴것"

by 태을핵랑 2020. 6. 28.

"문명은 감염병과 싸우며 진화했다, 이번에도 그럴것"

최대열 입력 2020.06.15. 12:10 수정 2020.06.15. 19:14


[창간기획] 대담-코로나 이후의 삶, 어떻게 바뀌나

1946년 콜레라 번지자 대구 봉쇄

코로나국면 '봉쇄' 거론되자 민심 대폭발

인류문명 형성때부터 전염병은 영향

근대적 차원 위생기구 촉발 계기

공공의료 확충 미리 투자 선제 대응


2020년 1월 발생한 감염병 ‘코로나 19’로 전세계는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길을 가고 있다. 관계성을 무너뜨리고 교류에 높은 벽을 치도록 한 이 감염병은 세계 경제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감염병에 갇힌 세상은 전통적 삶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길은 언제나 두렵고도 아득하다. 넘어지고 깨어져도 희망을 안고 밀어주고 당겨주며 함께 나아가자./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14세기 유럽을 휩쓴 페스트로 서양의 중세는 무너졌다. 치료를 맡은 성직자가 더 많이 죽어나가자 종교의 권위는 떨어졌고 결국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인구가 사라지면서 노동력이 귀해졌고 중세의 한 축, 장원제도도 허물어졌다. 그렇게 근대가 찾아왔다.


폭동 혹은 항쟁으로 불리는 1946년 10월 대구의 상황도 그 저변에는 감염병이 있었다. 해방 전후 방역 체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콜레라가 번졌다. 이를 막는다고 대구를 봉쇄해버리면서 민심은 폭발했다. 우리나라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올해 2월, 공교롭게도 배경은 또 대구였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봉쇄 조치를 운운하자 반발이 유독 거셌던 건 수십 년 전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일 테다.


여전히 국내에서도 하루 수십 명씩, 전 세계로 보면 십수만 명씩 환자가 나오는 걸 감안하면 코로나19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년이 채 안 되는 시기에 800만명이 감염됐는데도 "이제 시작"(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이라는 전망은 우리를 더 움츠러들게 한다. 다만 인류가 마냥 공포에 발 묶이지 않은 것은 문명의 시작과 함께한 수많은 감염병을 이겨내거나 제어가 가능한 수준으로 돌려놓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돌아봐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것은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의학ㆍ의료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에게 과거 인류가 어떻게 감염병에 대처했는지 들어봤다. 근대를 중심으로 국내 의학ㆍ의료의 역사를 연구하는 박윤재 경희대 교수는 인문한국+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연세대 의학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여인석 교수는 의사로서는 흔치 않게 서양 고대와 한국 근현대 의학사, 의철학을 중심으로 가르치며 연구 성과물을 내놓고 있다.


박윤재 서강대 교수


-과거 감염병을 대하는 태도는 지금과 어떻게 달랐나.


▲박윤재 경희대 교수(박)= 19세기 판소리 '변강쇠전'에 '신사년 괴질(怪疾)'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19세기 초 인도에서 시작해 영국, 유럽으로 번진 콜레라다. 신사년은 1821년으로 조선에서도 콜레라가 유행했고 당시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항 수단이 적어 공포가 클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던 이가 구토ㆍ설사로 갑자기 몸에서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해졌다. 결핵의 경우 치료제가 없어 서서히 죽어가는 병으로 여겼다. 결핵에 걸리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있었다.


▲여인석 연세의대 교수(여)= 조선 시대 들어 활인서 같은 전염병 유행 시 치료나 구빈 역할을 하던 공적 기구가 생겼다. 다만 의학적 개념을 접목한 방역이라기보다는 여제를 지내는 등 주술적 차원에 머물렀다. 전염병에 걸린 게 원귀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다만 허준의 '벽역신방', 정약용의 '마과회통' 등 기존에 없던 역병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전문 의서를 내놓긴 했다.


-감염병을 겪고 난 사회는 어떻게 바뀌는가.


▲여= 애초 인류 문명이 형성될 때부터 전염병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 양쯔강 이남이 기후가 좋고 비옥한데도 건조하고 척박한 황하를 배경으로 문명을 일으킨 것도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에서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건 한참 지난 송나라 이후다. 문명을 세팅하는 것 자체가 전염병을 피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근대 이후로 보면 국가의 공권력, 강제력이 정당성을 얻는 데도 영향을 줬다. 환자를 강제로 격리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데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이를 거부하지 않고 충분히 수용하는 것이다.


▲박= 근대적 행정 시스템을 갖춘 국가 차원에서 위생 정책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에서는 콜레라가 이 같은 근대적 차원의 위생기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본다면 계몽이 진행된다고 볼 수도 있다. 방역, 역병을 막는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대상이 되는 일반 국민이 감염병이 뭔지를 우선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지석영이 종두법을 시험해보기 위해 처남에게 먼저 주사를 놨을 때도 가족은 반대가 심했다. 이후 두창에 걸리지 않는 걸 직접 확인하고선 받아들이게 됐다. 새로운 생각이 정립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여인석 연세의대 교수


-제대로 된 방역은 무엇인가.


▲박= 일제 식민 시기 콜레라 유행을 막기 위해 경찰이 중심이 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만 하면 격리하는 식의 조치를 했다.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이던 만큼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었다. 방역이라는 게 강제를 전제로 하는 만큼 일정한 강압성은 불가피하나 그렇게 해서 효과적으로 역병을 막고 피해를 줄였는지는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0년 만주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막기 위해 압록강 등 국경을 봉쇄한 것은 당시로선 유일한 방법이었겠지만 이러한 강제 조치가 효율적이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방역의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선 질병 자체의 특성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이번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드러났듯 시민의 적극적 협조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여= 유럽 내 공공의료 체계를 잘 갖췄다고 평가받는 나라에서도 피해가 크다. 그 자체가 만능해결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탈리아처럼 정권 성향에 따라 보건의료 체계가 영향을 받는 곳도 있다. 비용을 줄여 딱 알맞은 만큼만 의료 체계를 유지하려다 보니 사태가 닥쳤을 때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당장은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그러한 쓸모 없는 분야에 미리 투자해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게 맞는다는 공감대는 생겼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유지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됐다는 뜻이다.

-코로나19의 재유행 혹은 전혀 다른 감염병이 또 올 텐데.


▲박= 모든 역병은 사회를 변화시킨다. 관건은 얼마나 좋은 사회로 탈바꿈할 것인가다. 당장 거리두기를 지속하고 백신ㆍ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겠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질병에 어떻게 대응할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국제 공조를 어떻게 할지 등 한 사회가 처한 현실과 인간의 특성을 고루 감안한 고민도 필요하다. 야생의 감염병이 인류를 공격하는 지금 상황은 무분별한 개발의 성과를 누리는 모든 현대인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리=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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