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만명이 1400조, 불안한 대출공화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09-28 01:48 | 최종수정 2017-09-28 09:20
외환위기 20년, 새로운 위기 대비하라
1997년 한국은 무너졌다. 당시 재계 14위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기아·해태 등이 쓰러졌다. 종금사와 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대량 실업이 이어졌다. 무리하게 늘린 빚을 기업이 갚지 못한 게 주 요인이었다. 20년이 흘렀다. 한국은 97년의 ‘치욕’을 간직했다. 외환위기로부터 얻은 교훈을 충실히 실천하는 데 집중했다.
나라 곳간은 튼튼해졌다. 외환보유액은 97년 12월 말 204억 달러에서 올 8월 말 3848억 달러로 늘었다. 대외건전성 지표는 양호해졌지만 위기는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성장률은 97년 5.9%에서 지난해 2.8%로 떨어졌다.
국가채무는 60조원에서 627조원으로 늘었다. 가계부채는 211조원에서 올 2분기 1388조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집계한 금융권 대출 보유자(2015년 9월 기준)는 1800만 명에 달한다. 19세 이상 성인(약 4100만 명) 중 43%가 금융권에서 빚을 냈다.
최근에는 북핵 위기도 더해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6~27일 이틀 동안 국내 채권시장에서 3조원어치를 순매도하는 등 이탈 조짐도 보인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 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지난 26일 0.7471%포인트까지 올라 19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한국에 경제위기가 다시 올 가능성이 있을까. 글로벌 금융기업에서 한국 경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하지만 97년과는 다른 문제가 한국 앞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가 대비해야 할 새로운 위험으로 ▶가계부채 ▶청년실업 ▶중국 경제 리스크 ▶산업경쟁력 약화를 꼽았다.
청년실업, 중국경제 불안 … 북핵 위기에 외자 이탈 우려 “성장잠재력 키울 구조개혁을”
킴엥 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아시아 국가신용등급 팀장은 “외환위기 경험 덕분에 한국 정책 결정자가 은행과 기업 부채에는 익숙해졌는데, 가계부채로 인한 리스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며 “가계부채 증가는 인구 변화, 주택 공급 정책 변화와 맞물려 위험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존 워커 맥쿼리코리아 회장은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이자 부담이 커져 부실 채권이 증가하고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실업도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리스크로 꼽혔다. 안위타 바수 EIU(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선임 국가 애널리스트는 “대졸자의 10%만이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일자리의 87%는 중소기업에 있는데 정작 중소기업이 국가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턱없이 작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둔화’도 신경 써야 할 과제다. 바수 애널리스트는 “부채 버블이 터지면서 중국 경제가 ‘파괴적 침체’를 겪으면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원 JP모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성장 잠재력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하고, 산업 구조개혁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영·정진우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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