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상제님 인간으로 오시다-<1> 상제님(미륵불) 강세의 길을 연, 진표율사
3.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강세하시다.
상제님께서 인간 세상에 직접 오시는 것은 선천 종교의 결론입니다.
상제님께서 실제 인간의 역사속으로 오시는 데에는 상제님을 알리고 기도하고 그 길을 미리 준비한 진표율사, 마테오리치 신부, 최제우 대신사, 김일부 대성사, 이 네 분 성인들의 공력이 있었던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 나라에 미륵부처님께서 강세하실 것을 지극 정성으로 기원한 진표율사의 구도의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상제님(미륵불) 강세의 길을 연, 진표율사
상제님의 강세를 언약 받은 도승, 진표율사
한국 불교사에서 미륵 신앙을 대중화한 분이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진표율사(734~?)입니다. 그는 12세에 출가하여 숭제 법사로부터 계를 받고 “너는 도솔천의 천주이신 미륵불에게 도를 구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전국 명산을 찾아다니며 미륵님께 기도하였습니다.
27세 되던 해, 진표율사는 서해 변산 의상봉 근처의 높은 절벽에 있는 아주 작은 동굴(부사의방장)에 들어가 3년을 기약하고 수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기授記를 받지 못해 절망에 빠진 그는 천 길 벼랑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청의靑衣동자가 나타나 그의 몸을 받쳐내려 주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진표는 다시 21일을 기약하고 온몸을 돌로 치는 생사를 건 수행[망신참법亡身懺法] 끝에 마침내 도를 이루고 미륵부처님을 친견하였습니다.
도통을 한 진표율사는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보고 미륵불께서 동방 땅에 강세하시기를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미륵불로부터 언약을 받은 그는 다시 미륵불을 친견하고 계시를 받습니다. 이때 미륵불께서는 당신님의 법신을 진표율사에게 드러내시고 한 발은 변산에, 다른 한 발은 금산사 터에 디디신 채 “나를 이 모양 이대로 조상造像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크기가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도저히 그대로 세울 수 없었던 진표율사는 지금의 미륵불상 크기로 금산사에 미륵 금불상을 조성하게 된 것입니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너의 동토東土에 인연이 있는 고로 내가‘이 동방’에 와서 30년 동안 금산사 미륵전에 머물렀다.”고 말씀을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진표율사는 석가 이후 3천 년 불교사에서 미륵부처님인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도통을 받은 유일한 인물입니다.
미륵부처님(상제님)의 한반도 강세를 탄원한 구도자, 진표율사
도승 진표율사(眞表律師)는 1,200여 년 전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도승이다. 12세에 출가하여 30세에 불교 역사상 최초로 직접 미륵불을 친견하는 원각대도통을 하여 미래세계를 훤히 내다본 그는 이후로 ①미륵불께서 한반도에 강림해 주실 것과 ②우주의 선후천이 바뀌는 우주 가을의 개벽시기에 자신이 다시 태어나 인간구원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간절히 서원하였다.
[애니멘터리] 한국설화 - 진표 율사의 구도체험기
*영상출처: https://youtu.be/uJsuBqpdfJU
아래의 내용대로 증산도의 도전과 삼국유사를 보면, 미륵부처님의 도법을 간절하게 구하는 진표율사의 일심 지극정성을 다하는 구도의 과정이 생생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증산도甑山道 도전道典 1편7장 말씀.
미륵불의 동방 조선 강세의 길을 연 진표 대성사
동방 조선 땅의 도솔천 천주님 신앙은 진표율사(眞表律師)로부터 영글어 민중 신앙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
진표는 12세 때 부모의 출가 허락을 받고 김제(金堤) 금산사(金山寺)의 숭제법사(崇濟法師)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으니라.
법사가 진표에게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님 앞으로 가서 간절히 법을 구하고 참회하여 친히 미륵님의 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 하매
이로부터 진표가 미륵님에게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리라는 큰 뜻을 품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도를 닦더니 27세 되는 경자(庚子, 760)년 신라 경덕왕 19년에 전북 부안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가 미륵불상 앞에서 일심으로 계법을 구하니라.
그러나 3년의 세월이 흘러도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지니 그 순간 번갯빛처럼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살며시 손으로 받들어 바위 위에 놓고 사라지더라.
이에 큰 용기를 얻어 서원을 세우고 21일을 기약하여 생사를 걸고 더욱 분발하니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온몸을 돌로 두들기며 간절히 참회하매 3일 만에 손과 팔이 부러져 떨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거늘
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손에 금장(金杖)을 흔들며 와서 진표를 가호하니 곧 회복되니라.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21일 공부를 마치던 날 천안(天眼)이 열리어 미륵불께서 수많은 도솔천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대광명 속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니라.
미륵불께서 진표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시기를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戒)를 구하다니. 신명(身命)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하는구나.
내가 한 손가락을 튕겨 수미산(須彌山)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네 마음은 불퇴전(不退轉)이로다.” 하고 찬탄하시니라.
이 때 미륵불께서 점찰경(占察經) 두 권과 증과간자(證果簡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하시고 하늘로 사라지시니라.
원각(圓覺) 대도통을 한 뒤, 닥쳐올 천지 대개벽의 환란을 내다본 진표 대성사(大聖師)는 온 우주의 구원의 부처이신 미륵천주께서 동방의 이 땅에 강세해 주실 것을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니 이로부터 ‘밑 없는 시루를 걸어 놓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4년에 걸쳐 금산사에 미륵전을 완공하니라.
이 뒤에 진표는 미륵불의 삼회설법의 구원 정신을 받들어
모악산 금산사를 제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2도장, 속리산 길상사(현재 법주사)를
제3도장으로 정하고 용화도장을 열어 미륵존불의 용화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십선업(十善業)을 행하라는 미륵신앙의 기틀을 다지고 천상 도솔천으로 올라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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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 진표율사는 1300여 년 전에 뼈를 깎는 아픔을 디디고 우주의 대도를 정각하여 미륵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은 분이다.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의 창시자였으며, 지금까지 전하는 미륵부처님 신앙의 원맥은 모두 이 분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진표는 나에게 대연(大緣,큰 인연)이 있느니라. 道典 2:66
내가 미륵이니라.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道典 10:33
미륵불 조상의 신비- 밑 없는 철 시루위에 뜬 미륵불
미륵불상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고 불상을 세우기 위해 당시 금산사 내에 있는 ‘사답(寺沓) 칠두락(일곱 마지기)’ 정도 넓이의 연못(龍沼=용추 못)을 흙으로 메웠는데 이튿날 보니까 다 파헤쳐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 때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숯(목탄)으로 메우라고 일러준다.
이에 진표율사는 도력(道力)을 써서 안질을 퍼뜨린 후 ‘누구든지 안질을 앓는 자는 금산사 용소에 숯을 한 짐 집어넣고 못물로 눈을 닦으면 낳는다.’는 소문을 낸다. 이때 안질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숯을 집어넣으니 그제야 연못은 메워지게 되었다.
이때가 신라 경덕왕 21년(서기 762년) 4월 27일 이었다.
<금산사 석련대>사진
진표율사는 연못이 숯으로 메워지자 미륵불상을 받쳐 세우기 위해 연못 한 가운데에다 연꽃모양을 조각한 큰 바위 (석조 연화대 또는 석련대, 현재 보물 23호)를 세웠으나, 무슨 조화에서인지 석련대(石蓮臺)는 밤 사이에 20여 미터나 떨어진 위치(현재 석련대가 있는 위치)로 옮겨져 버린다.
이 때 미륵이 꿈에 현몽하여 "야, 이 미련한 놈아!! 돌이란 직접 불에 들어가면 튀는 법이니라.”고 계시를 한다.
율사에게 다시 ‘밑 없는 시루를 걸고 그 위에 조상하라‘는 수기(授記)가 내려졌다.
이에 다시 진표율사는 연못 중앙에다 밑이 없는 대형 무쇠시루(甑증)를 걸고 그 위에다 우물 정(井)자 형태의 나무 받침목을 얹은 다음 철로 된 미륵 불상을 세우게 된다(762년 건립을 시작하여 4년에 걸쳐 766년 완공).
지금도 금산사 미륵전에 가보면 120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오늘까지 전해져오는 석련대와 철수미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3존불이지만 원래 단독불이었다고 한다.
<미륵불을 안치한 철수미좌>사진
진표율사가 장차 한반도의 남조선에 강세하실 미륵불의 모습을 계시 받고 세워놓은 금산사 금미륵불상은 높이가 33척(10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입불상이며, 또한 금산사 미륵불은 철수미좌(철시루) 위에 올라서있는 유일무이한 불상으로 유명하다.
불상의 좌대로 특이하게도 철을 사용했으며 그 크기가 지금이 2.5~3미터, 두께가 10센티미터, 높이가 약 1미터의 원통형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서 밑 없는 시루를 걸라는 미륵존불의 계시는 앞으로 당신께서 직접 강세하실 도적 비의를 말씀해주신 것이다.
이는 상제님께서 증산甑山(시루증.뫼산)이란 도호로 한반도에 강세하실 것을 은밀히 비유하여 계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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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 강세를 준비한 진표율사
진표 대성사 (732~?)
진표 대성사는 지금부터 1300여년 전 통일신라시대의 고승이다. 불교역사상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부처님을 직접 친견한 유일한 구도자로서, 미륵불의 한반도 강세를 약속받고 금산사 미륵전을 지어 이를 준비하신 분이다. 지금까지 우리 민족에 내려오는 미륵신앙의 원조가 되는 분이다.
신라와 백제시대 때부터 꽃피기 시작한 도솔천의 천주님(미륵부처님)에 대한 신앙은 진표 대성사로부터 영글어 민중신앙으로 개화되었다. 법상종의 개조이기도 한 그는, 일찍이 12세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출가허락을 받고 고향(전주 만경현 대정리)을 떠나 곧장 전북 김제군에 있는 금산사에 가서 숭제법사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
미륵부처님을 친견하다
그리고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겠다는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전국 명산을 순행하다가, 27세 되던 경덕왕 19년(경자, 760년) 부안 변산에 있는 '부사의방장'에 들어가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초인적인 정열을 발휘하며 구도에 정진하였다. 쌀 두 가마를 쪄서 말린 양식을 가지고 입산한 그는 하루에 두어 홉씩 먹으며 미륵불상 앞에서 지극정성으로 참회하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3년이 되어도 천상으로부터 장차 도를 통하게 되리라는 암시적인 한소식을 받지 못하자 죽을 결심으로 바위 아래로 몸을 날렸는데, 이 순간 청의동자가 진표 대성자를 손으로 받아 바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이에 용기를 얻고 서원을 세워 21일을 기약하고 생사를 걸고 더욱 정근하여 온몸을 돌에 던지고 수없이 참회하자, 3일이 되었을 때는 팔굽과 두 무릎이 터져 피가 흐르고 힘줄이 드러났다.
7일째 밤에 지장보살이 주장자를 짚고 나타나 몸을 간호해 주고 가사와 바리때를 전해주자, 더욱 확신을 갖도 혈심으로 정진하여 21일이 끝나는 날 마침내 정각 도통을 하여 천안을 열었다. 이에 지장보살 등 수많은 도솔천중을 거느리고 오시는 도솔천의 천주님이신 미륵존불을 친견하고, 다음과 같이 증과간자 189개를 받는다.
"장하도다. 대장부여! 계를 구하기 위해 이렇게 신명을 아낌없이 지성으로 참회함이여!... 이중 제8간자는 본래 깨달은 불종자를 표시함이요, 제9간자는 새로 닦아 나타나는 불종자를 표시함이니 이것으로 장래의 과보를 알리라. 이 뒤에 그대는 이 몸(육신)을 버리고 대국왕의 몸을 받아 후에 도솔천에 나리라" 하시고 천상을 환어하셨다. 이 때가 율사 30세 되던 임인(762)년 4월 27일 이었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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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미륵 천주님께서 진표 대성사를 장차 대국왕으로 임명하심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원각 대도통을 하신 진표 대성사는 자신의 때로부터 천 수백년 후에 일어나는 천지 대개벽의 환난을 환히 내다보고, 그 때 미륵천주께서 동방의 이 강토에 강세해 주실 것과 자신을 큰 일꾼으로 써 주실 것을 지극 정성을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미륵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게를 받은 진표 대성사는,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사를 미륵불을 모신 대가람으로 중창하였다. 현재의 금산사 미륵전 자리는 본래 큰 연못이었다고 하는데, 진표 대성자는 미륵불의 계시를 받고 이 연못을 모두 숯으로 메운 다음, 연화대 대신 쇠로 만든 밑없는 시루를 놓고 그 위에 미륵불을 조상하였다.
지금까지도 이 밑없는 시루가 미륵불상을 떠받치고 있는데, 금산사 미륵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지하에 내려가 이 커다란 시루를 한 번씩 만져보기도 한다.
사회에 큰 비리와 죄악을 계속 저질러 온 사교집단 대순진리회에서는 자신들의 도통연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 시루 밑에 솥이 또 있다고 조작하여 종교장사를 하고 있는데, 솥은 없고 본래부터 이 시루만 있다. (甑증 자는 솥 甑증 자의 의미로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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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신앙의 원조가 되다
인류 구원을 향한 큰 발원으로 개벽의 시대를 활짝 연 진표 대성사는 미륵부처님의 삼회설법이라는 우주 구원의 대도정신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모악산 금산사를 제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2도장, 속리산 법주사를 제3도장으로 창건하였다. 그리고 민족과 세계구원의 기틀을 준비하기 위해 미륵신앙의 전파에 한평생을 바치고 천상 도솔천으로 올라가셨다. (삼국유사, 미륵성전 218~223참고)
<속리산 법주사의 청동미륵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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