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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한민족 문화코드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가 강제 해산시킨거 아세요?

by 태을핵랑 2017. 11. 20.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가 강제 해산시킨거 아세요?

 

일제, 유사종교해산령 만들어 보천교와 민족종교 강제 해산시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일제는 한국의 민족성, 독립 등을 풍기는 모든 단체는 철저하게 해체시켰습니다. 그 정점은 1936년에 내린 '유사종교 해산령'입니다. 두 사람 이상의 집회가 금지되고, 1원 이상의 금전수합 역시 금지되었습니다. 유사종교 해산령에 따라 각도 경찰국은 종교시설물을 폐쇄시키고, 종교지도자들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1936년 6월 6일, 일경이 보천교 간부 24명을 연행하였고, 이틀 후에는 경찰 수십명이 밀어닥쳐 본소 성전의 제기와 일월상, 제단마저 전부 뜯어갔습니다. 6월 15일에는 보천교 건축물을 강제로 경매에 부쳤습니다.

 

정읍에 있던 보천교 본소 중심건물인 십일전은 일제에 의해 강제 경매.해체되어 조계종 조계사 대웅전 건설재료로 사용되었다. 사진은 1938년 경 사진으로 십일전 기둥으로 조계사 대웅전을 짓는 모습이다. 조계종 홈페이지

 

월곡 차경석은 항일투쟁과 민족독립의 영웅

보천교 본소 십일전 건물은 뜯겨져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대웅전이 되었고, 본소 정문이었던 보화문은 옮겨져 내장사 대웅전이 되었다.

"월곡 차경석 옷 두벌만 지니고 다니며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항상 도망다녔습니다. 그는 상해 임정이나 독립단체에서 지원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다 협조해 주었습니다. 차경석 셋째딸의 증언에 의하면 김구 선생도 여러 차례 정읍을 비밀리에  찾아와 차교주를 만났다고 합니다. 보천교는 국권회복운동, 독립운동의 심장부였습니다. 정읍독립운동의 메카였습니다.

월곡 차경석 선생이 일제친일언론에 의해 친일파, 사이비교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잘못된 역사가 바로 잡히고 잃어버린 보천교의 역사가 드러나게 되면 우리는 그를 항일투쟁과 민족독립의 영웅, 새 역사의 문을 연 위대한 지도자로 받들게 될 것입니다." (안경전 상생문화연구소 이사장, 근.현대사에서 보천교의 위상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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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보천교 十一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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