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부처님 출현과 북방불기 연대설 분석 결과 일치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시는 북방불기 연대설 일치.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천 년 도수
하루는 상제님께서 금곡과 함께 계실 때
문득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너는 누구를 믿을 것이냐?
석가는 삼천 년 도수밖에 안 되느니라.
너는 오만년 운수를 안 받을 테냐?” 하시고
“앞으로는 미륵존불의 세상이니라.
내가 곧 미륵이니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에 금곡이 아뢰기를
“저는 석가 부처를 믿지 않고 증산 당신님만 믿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크게 웃으시며 “믿어 보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금곡에게
석가가 삼천 년 도수인데 삼천 년이 곧 물러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니라.
甑山道 道典 4편 47장
석가불의 신도 위격과 신계의 주벽 동방칠성
하루는 상제님께 여쭈기를
“천상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 흰옷을 입고 글씨 쓰던 선관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다시 여쭈기를 “석가불이 천조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사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제군(大帝君)의 높은 자리이며 서방칠성(西方七星)이니,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느니라.” 하시거늘
형렬이 “그러면 동방칠성(東方七星)은 누구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은 신계(神界)의 주벽이니라. 장차 너희와 한가족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천상에서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었는데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까이에 있으니 삼간 것이며 혹시 말을 했다가
망령되이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甑山道 道典 4편 35장
불당출현 삼천년후
명삼세명등 실능현 일체여래 제본사 해
佛當出現 三千年後 名三世明燈 悉能現 一切如來 諸本事 海
미륵부처님이 삼천년 후에 출현하시는데
三世 (과거, 현재, 미래)의 등불을 밝혀 부처의 근본이 되는 甘露海人(감로해인)을
능히 나타내어 보여준다. 華嚴經(화엄경)70권입법계품(入法界品)제39-11
北方大乘佛紀(북방대승불기):
1962년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역시 북방불교의 불기를 사용했는데
인도(印度) 아쇼카왕의 비문을 해석해 보아도
역시 3000년 설이 일치되며 삼광법사 불공화상(不空和尙)이 전해준 능엄경에도 역시 일치되고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발행한
호계첩(護戒牒) 문서 말미(末尾)에 丁酉(1957)년 불기2984년이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부산 범어사 입구비문에 1913(癸丑)년이 불기294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불기3000년은 1973년이 된다.
오늘의 불기가 3000년이 지났음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를 보면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하고 호국불교을 장려하기 위하여 창건한
개태사 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 所在)내에
창건당시 사용했던 철확(가마솥)이 보존되어 있는 宇宙井(우주정) 건물 천정을 받치고 있는
상량기둥 목에, 北方佛紀 3008년 辛酉(1981)년이라고 기록돼 있고
경남 산 통도사 발행의 호계첩의 역사연대와 일치하고 부산 범어사에 연대와 일치하다.
개태사 一柱門(일주문) 上樑(상량)기둥목에
북방불기 3007년 北方佛紀 三千七年 경신(庚申)년이라고 적혀 있으니 또한 일치하다.
이것이 북방대승불기 연대기이다.
南方小乘佛紀(남방소승불기): 남방불기 2505년도에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세계불교 대회를 열었는데
세계 남방불기로 통일해서 지금까지 사용하는 것이 남방소승불기 연대기(年代期)이다.
(1962년도에)
涅槃經(열반경)2권 優曇花 三千年開花 佛如優曇花
(우담화가 삼천년만에 피는데 미륵부처님도 三千年에 출현한다는 뜻이다.)
북방불기 3000년설
1)북방불기로 이미
3000천년이 지났음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를 든다면.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자리잡고 있는 조계사 사찰 경내에 있는
석가세존사리탑비에 불기 2957년이라고 되어 있다.
북방불기 2957년+43년=북방불기 3000년이다 불방불기 2957년이 서기 1930년이 된다.
서기 1930년+43년=서기 1973년이 된다. 북방불기 3000년이 되는 해이다.
2)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 소재 개태사 일주문에 보면 3000설이 나오고
3)서기 1961년 북방불기 2988년 남방불기 2505년
캄보디아 제6차 세계불교 대회에서 남방불기만을 사용하기로 결의를 하였다.
불교 진리면에서 큰 오류를 남기고 있다.
3007년은 언제인가?
우리나라의 큰 사찰이나 오래된 사찰에 가보면 절집의 초석 또는 일주문의 상량목에 분명하게
불기 2900년 이상으로 새겨져 있음을 알수가 있다.
북방불기의 흔적을 보면
운허스님 판 동국 역경원 불교사전의 서문에도 북방 불기의 표가 보이고 있다.
즉 "불기2988년 2월에 퇴경상로"라고 적혀 있으며
"단기4294년 3월 1일 석 청담" 서문에 기록이 있는데. 서로 짝을 맞추어 보면 1961년도를 말한다.
부산에 있는 "범어서"에서도 1962년을 불기 2989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쇼카왕의 비문해석이나 삼장법사의 불공화상이 전해준 능엄경에도 기록되고 있다.
지금은 불방불기 3028년이 2001년이다.
불기
20세기 불교학의 영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불기(佛紀)를 바꾼 것이다.
보각일연(普覺一然: 1206∼1289)의『삼국유사』권3,「가섭불연좌석」조에는
석가모니불로부터 지원(至元) 18년(1281)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이 2230년이 된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대승불교권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던‘북방불기’이다.
북방불기는 불생년을 B.C 1027으로 하였다.
오늘의 공통불기는 불멸년을 B.C 544년으로 하고,
불생년을 B.C 624년으로 하는 불기이다.
이처럼 북방불기와 공통불기는 불생년이 403년의 차이를 보인다.
그런데 1956년, 세계불교도회의에서
B.C 544년을 세계 공통의 불멸기원으로 할 것을 합의한 것은
20세기 불교학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의천집『원종문류』권22, 한국불교전서제4책, pp.635하∼636상;『삼국유사』권4,「의상전교」조.
북방 불기의 사용은 분명하게 현재에도 많이 보여지는데
이 책에서 밝힌 운허스님 판 동국 역경원 불교 사전의 서문에도 북방 불기의 표시가 보이고 있습니다.
즉 “불기 2988년 2월에 퇴경 상로” 라고 적혀 있으며
“단기 4294년 3월 1일 석 청담” 이라고 서문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서기로 맞추어 보면 1961년도를 말하며 이런 사실을 보아도 북방 불기가 분명하게 있었으며
또한 능엄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답니다.
정본수능엄경(正本首楞嚴經) 제 1권 석사기(釋師記)
釋迦世尊 周昭王二十四年 甲寅四月八日 降生任伽毘羅衛國 淨梵王宮 七十
석가세존 주소왕이십사년 갑인사월팔일 강생임가비라위국 정범왕궁 칠십
九年住世 四十九年說法 漢明帝時 天笁蟄? 祝法蘭說明 四月八日則今二月
구년주세 사십구년설법 한명제시 천축법사 축법란설명 사월팔일칙금이월
八日迄緊訥?? 則二千八百六十七年 佛紀一千七百三十二年之 唐神龍元年
팔일흘금경자년 칙이천팔백육십칠년 불기일천칠백삼십이년지 당신용원년
乙已 中印度人波羅密諦 入唐 始譯此經
을이 중인도인파라밀체 입당 시역차경
석가 세존께서는 주소왕 24년 갑인년 4월 8일에 가비라국의 정범왕궁에 나셨다.
79년 세상에 머무셨고 49년간 설법하셨는데 한나라의 명황제 때에 천축국의 법사인 축법란이 설명하기를 4월 8일은 곧 지금의 2월 8일이며, 지금의 경자년이 불기 2867년이고 불기 1732년 당나라의 신용기의 원년이 된다.
인도 사람인 바라밀제가 당나라에 들어와서 이경을 번역한 것이다.
이 능엄경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이 능엄경이 불기를 증거하는 부분이며, 그러므로 석존이 주소왕 24년 갑인년(甲寅年)에 태어났다고 하므로 주(周)나라의 소왕 이후 지금까지 역사를 뒤돌아 소급하여 계산해 보면 갑인년을 50회를 곱하면 3001년이 되고,
금년인 1998년 무인년(戊寅年) 까지 24년을 더하면 불기 3025년이 되는데 화엄경에서 밝힌 것과 같이, 불기 3007년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1998년이 불기 3025년이 되므로 18년을 빼면 서기 1980년이 불기 3007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 사전의 서문에 쓰인 불기 2988년과 단기 4294년은 서기로 1961년이 됩니다.
즉 화엄경에서 예언한 불기 3007년은 바로 우리가 지금 삶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간인 1980년이 불기 3007년이 되며 부처는 우담꽃과 같다는 3000년 설에도 부합되는 것이고, 증일아함경에서 증거한 미륵부처님이 석존 사후 30겁이 지난 후에 마땅히 불도를 이룬다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경이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모든 욕심을 관장하는 악의 우두머리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혜탈하여 인간의 모든 욕심을 넘어서는 순간 화살을 쏘아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얼굴까지 다가왔던 화살이 연꽃으로 화하여 사라져버리게 되죠.. 악은 너무나 집요하고 지기 싫어하죠.. 그때 악은 말했습니다..
불기 3000년이 지나면 불도의 모든 제자는 나의 제자가 될 것이다...
그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제 불도를 닦는 자들은 더이상 인간적 사욕을 버리고자 하지 않고 부처를 더이상 마음에 품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2004년은 3031년이 맞습니다
불기 2958년은 1931년 신미년입니다
1934년은 갑술년이구요 신무년이란 간지는 없습니다
불교의 기원은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이 아니라 입멸로부터이며, 佛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佛紀는 BC1027년 갑인 4월 8일 고타마 싯타르타 태자가 탄생하여 BC948년 임신 2월 15일에 입멸하였다는 설로서 서기 2004년 甲申年은 佛紀 3031년이 된다.
스리랑카에 전해오는 BC543년 설과, 태국과 미얀마에 전해오는 BC544년 설, 중성점기에 의한 BC485년 설, 가이거의 BC483년 설, 막스뮬러의 477년 설, 宇井伯壽의 BC386년 설, 中村元의 BC383년 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북방의 기록은 BC383년 설이며 남방은 BC483년 설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佛紀 2548년(서기 2004년)은 인도 및 스리랑카에서 거행하였던 불멸 2500년 축제를 기준으로, 1956년에 열린 제 4차 세계불교도 대회에서 채택하였으며, 우리 나라는 1970년부터 지금의 불기를 사용하였다.
불교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 것은 가르침을 문자로 기록하지 않고 암송하는 인도의 전통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도인들의 사유구조로서 특히 역사연대와 같은 인식은 아주 희박한 편이다.
그러므로 인도 고대사는 중동이나 이집트 등 주변국가의 역사와 대조하여 재구성하는 편이며, 석존의 입멸을 추론하는 중요한 역사근거인 아쇼카 왕의 재위마저도 차이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인도인들의 풍토에서 기인한다.
북방불기로는 불탄 3030년, 남방불기로는 불멸 2547년 (2010.08.28 18:34:01)
불기(佛紀, Buddhist Era)란?
불기는 석가부처가 입적한 년(즉 돌아가신 해)를 기원(紀元)으로 잡는 연기(年紀)다.
석가부처의 입적에 대한 기록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임종 후의 교단을 위하여 자등명 법등명을 설하는 내용과 더불어 기록되어 있다.
구시나라의 사라쌍수라는 곳에서 80세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고대 인도에서는 객관적 서술로 기록된 역사서가 존재하지 않게 때문에, 불타의 입적연대에 대해 많은 이설(異設)이 전해진다는 것이다.
불기는 크게 남방불기와 북방불기로 나뉘는데, 이 둘은 약 4, 5백년의 연대차이가 있다. 어떻게 30,000명이 넘는 제자를 둔 성인의 생몰연대에 대한 기록이
1, 2년도 아니고 수백 년이나 오차가 생길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불기
우리나라는 서기 2000년을 불기 2544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계산에 의하면 석가부처는 543BCE(Before the Common Era: 기원전, BC연대와 동일)에 열반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상좌부(동남아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부파)가 보드가야에 있는 비문을 토대로 산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서양학자들과 인도학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최초로 수입된 것은 고구려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부터 1962년까지 약 1300년 동안에는 석가부처의 탄생을 1027BCE, 입멸을 949BCE로 하는 북방불기를 사용했다.
여기에 따르면 올해는 불탄 3028년, 불멸(불기) 2950년이 되는 것이다.
즉 현재 사용되는 불기 2544년 즉 남방불기와는 약 500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1)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있는 석가불의 입멸연대로써 환산하면 석가부처는 949BCE에 입멸하였다.
(2) 1963년 동아일보 5월 1일자 ...(사진 생략)...
5월 초파일 불탄봉축' 기사 내용 중에서 석가탄생 2989주년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여전히 북방불기의 불탄기원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 사찰에서는 북방불기를 고수하고 있다.
한 예를 보면 왕건의 후삼국을 통일한 후 세웠다는 충남 연산의 개태사는 불탄을 기원으로 하는 북방불기(3007년=서기 1980년, 일주문상량)와 불멸을 기원으로 하는 남방불기(불기 2542년=서기 1998년, 정문상량)을 함께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사진 생략)
북방불기가 남방불기로 전격적으로 교체된 계기는 1956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불교각국의 통일적 불기사용을 위하여 남방불기를 근거로 사용하기로 의결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 6차회의에 처음 참가한 후 남방불기를 채택했다.
이 회의에 이청담(1966년 6대 종정에 취임)등 3명이 파견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대원사 칠성각에서 보신 49일 대공사
기유년 봄에 상제님께서 내성과 형렬 등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대원사에 들어가시어 대공사를 행하시거늘 이 때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명을 내리시니 내성과 성도들이 아랫마을 등지로 출입하며 심부름을 하니라.
하루는 금곡과 성도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칠성각에 들어가리니 밖에서 종이를 발라 방문을 밀봉하고
내가 부를 때까지 칠성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하시고
칠성각 안으로 들어가시어 남쪽에 청수 한 그릇을 모신 후 방문을 잠그시니
금곡과 성도들이 명을 좇아 출입문을 완전히 봉하니라.
이에 성도들이 말하는 것도 삼가는데 금곡 또한
일체 불공을 올리지 않으며 내성이 칠성각 주위를 돌면서 보초를 서니라.
그 후 수십 일이 지나도록 간간이 기침 소리만 내실 뿐
물 한 모금 잡숫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시거늘 금곡과 성도들이 심히 걱정하더니
49일째 되는 날 상제님께서 방을 나오시어 기지개를
크게 켜시며 “다 끝났다. 가자.” 하시는데 용안에서 환하게 빛이 나는지라
금곡이 순간 탄복하여 말하기를 “이 어른이 하느님이네!
어떻게 사람으로서 49일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도를 구하겠는가!” 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내성에게
오른쪽 버선 한 짝을 건네시거늘 내성이 보니 담(痰)이 가득 담겨 있더라.
너의 신세를 많이 지고 가는구나
이어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물으시기를 “며칠이나 되었는고?”
하시니 금곡이 “49일 되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그러하냐.” 하시고
곧바로 대원사를 떠나시며 “금곡아,
내가 너의 신세를 많이 지고 가는구나.” 하시매
금곡이 몸둘 바를 몰라하며 “선생님 말씀이 석가의 도수는 삼천 년밖에 안 된다
하셨사온데 제가 선생님을 믿지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니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이 다음에 자네하고 나하고 다시 만나세.” 하시니라.
이후로 금곡은 상제님이 마지막으로 다녀가신
방을 금쪽같이 아끼며 “미륵님이 여기 계시는데 석가모니가 무슨 필요 있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일체 불공을 올리지 않으니라.
훗날 내성의 큰아들 문환(文煥)이 칠성각에 들어가 보니
상제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만 마치 불을 땐 것처럼 따뜻하였다 하니라.
甑山道 道典 5편 36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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