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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성씨,나의뿌리53

한국의 성씨 / 계桂씨 한국의 성씨 / 계桂씨 수안遂安 계桂씨 시조 계석손桂碩遜 수안 계씨의 시조 계석손桂碩遜은 중국 명나라 천수天水 사람으로 중국 성양태수城陽太守를 지낸 계경횡桂炅橫의 셋째 아들이다. 「수안계씨족보」에 따르면, 계석손은 명나라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내다가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의 명으로 조선에 예학禮學 전수를 위해 파견되었다. 그 후 조선에 귀화하여 수안백遂安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이로써 수안 계씨가 창성되었다. 시조 계석손의 아들 4형제 대에서 전국으로 이거하였다. 큰 아들인 계원우桂元祐는 선천宣川으로, 둘째 아들인 계원조桂元祚는 강화江華로, 셋째 아들 계원제桂元禔는 강동江東으로 각각 이주하였다. 이후 16세손 계덕룡桂德龍이 삭주朔州에 터를 잡았고 그 자손은 의주義州까지 퍼져 가서 계씨가 평안도를 중심으.. 2017. 10. 20.
김일제金日磾, 여진 김씨, 신라 김씨, 경순왕 김일제, 여진 김씨, 신라 김씨, 경순왕 김일제金日磾는 누구? 4세기 후반경 훈족(흉노)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대륙에 게르만족 대이동의 물결이 시작됐다. 이때 흉노의 또 다른 이동이 동쪽에도 있었다. 때는 한 무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무제가 흉노를 공략할 때 흉노 좌현왕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한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왕자는 궁궐의 말을 돌보는 일을 맡았는데, 품위 있는 거동과 성실함이 한 무제의 눈에 띄어 무제의 측근이 되었다. 이 흉노 왕자의 이름이 김일제(BCE 134∼BCE 86)이다. 뒤에 무제는 망하라莽何羅의 반란을 막은 공을 치하하여 그를 ‘투후秺侯’로 봉하였다. 투후는 ‘오르도스의 제후’라는 뜻이다. 김일제의 후손 중에서 왕후(전한 11세 원제元帝의 비 효원왕후)도 배출되.. 2017. 10. 20.
한국인의 성씨/ 안동安東 김씨 한국인의 성씨/ 안동安東 김씨 안동安東 김씨 현재 안동安東 김씨에는 뿌리가 다른 두 개의 성관이 존재한다. 선先(또는 구舊) 안동 김씨와 후後(또는 신新) 안동 김씨가 그것이다. 선 안동 김씨는 경순왕의 손자인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삼별초의 난과 왜구를 토평하여 상락군 개국공신에 봉해진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는 성관이다. 반면 후 안동 김씨는 안동의 성주로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여 개국공신 삼광태사에 오른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두 안동 김씨는 2015년 통계청 조사에서 519,719명으로 조사되었다 선(구)·후(신) 안동 김씨로의 분파와 인구 선(구) 안동 김씨의 중시조 김방경金方慶의 아들과 손자들이 고려 말에 크게 이름을 떨쳤으며, 조선 전기에는 김.. 2017. 10. 20.
한국인의 성씨/ 김녕金寧 김씨 한국인의 성씨/ 김녕金寧 김씨 김녕金寧(금녕) 김씨 김녕金寧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넷째 아들인 김렴金濂을 시조로 하고, 고려 인종 때 병부시랑으로 묘청의 난을 평정하여 광록대부를 거쳐 평장사에 올라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진 김시흥金時興(시호 문열文烈)을 중시조로 하는 성관이다. 2015년 조사에서 김녕 김씨 인구는 57만 7천 명으로 조사됐다. 분파와 갈래 김렴의 후손으로는 첫째 품언稟言을 시조로 하는 수원水原 김씨가 있으며, 둘째 심언審言을 시조로 하는 영광靈光 김씨가 있다. 그 중 김품언이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공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움으로써 수성군水城君에 봉해졌는데, 그 후손 중에서 수원 김씨, 인동仁同 김씨, 용성龍城 김씨, 용담龍潭 김씨, 서흥瑞興 김씨, 한남漢南.. 2017.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