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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메시지/2.우주와 인간

우주의 창조원리 : 천지의 시간개벽

by 태을핵랑 2017. 11. 18.

우주의 창조원리 : 천지의 시간개벽

 

나는 생장염장(生長斂藏)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해와 달이 나의 명(命)을 받들어 운행하나니 하늘이 이치(理致)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느니라. (증산도 道典 2:20:1~3)

 

우리의 인생은 신비 그 자체다. 인간은 우주와 생명의 수수께끼를 돌돌 말고 나와서 미지의 운명의 길을 걸어가며 이를 한 올 한 올 풀어 가는 꿈과 자유의 투사이다.

한없이 이어져 있는 레일 위를 기차가 달려가듯, 우리 인생도 진리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며 한 생애를 살다 간다. 인간이 어떠한 짓거리를 다하여도 그때마다 소리없이 고여 우리의 영혼을 멍울지게 하는 이 침묵의 심연은 무엇인가?

어떠한 권좌에 올라선 사람도, 인생의 진창에서 끝없는 고통과 쉴 틈 없는 들볶임에 눈물짓는 사람도, 지구 땅덩어리를 다 살 수 있는 황금 백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유한한 삶이 다하기 전에 기어코 풀어내야 할 커다란 숙제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찾아 나서려고 하는 이 의문의 해답은, 일찍이
청세조(淸世祖) 순치제(順治帝, 1638∼1661)가 금산사에서 말을 타고 놀다가 구도에의 충격을 크게 받고 인생의 허무를 고백한, 생동하는 다음의 양심선언과 동일한 것이리라.

황금빛 곤룡포를 붉은 가사로 바꿔입고 구도길에 나서니,
내 본래 서방(인도)에서 구도하던 한 이름 없는 승려이더라.
그런데 어찌하여 떠돌다 제왕의 왕가에 떨어졌는고.
아, 내가 생겨나기 전에는 무엇이 나였던 것일까?
사람으로 생겨난 이 나는 누구인 것일까?
아, 이렇게 다 큰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두 눈 감으면 몽롱한 환상의 어둠 속에서 노니는 이는 또 누구인가?
백 년의 세상사 한밤의 꿈이요,
만리강산은 한 판의 바둑놀음이로다.
(吾本西方一納子, 然何流落帝王家! 未生之時誰是我, 我生之後我是誰?
長大成人方是我, 合眼朦朧又是誰? 百年世事三更夢, 萬里江山一局棋? 「順治皇帝 出家偈」에서)

산하대지의 주인으로서 6세에 황제가 되어 18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자 했던 그가 인생의 무상과 허무의 마력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내 이제 빈손 들고 부처님께[西] 돌아가노라(我今撤手西歸去)”고 했던 것이다.
우리가 순치제의 경우는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따금씩 삶의 신비와 우주의 수수께끼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의문이 솟아오르는 순간과 마주치게 된다.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이 의문의 불덩어리는 태초에 신(神)이 우주를 생성할 때 오직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만 넣어준, 근원에 대한 향수(鄕愁)의 염(念)을 솟구치게 하는 그리움의 뿌리임에 틀림없으리라.
우주는 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만약 조물주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무엇 때문에 인간을 만들어내었는가? 그리고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 지상에서의 인생이란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실패작일까? 아니면 선악과를 따먹은, 유혹에 약한 인간의 원죄와 타락 때문인 것일까?
인간의 뇌세포가 진리의 빛으로 깨지기 시작하던 인류문명의 여명기로부터 이지(理智)가 극도로 발달한 말세의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이러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다만 무지의 광기(狂氣)로 채색된 채 오늘도 순진한 신앙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생의 번뇌와 괴로움이 투정을 부리며 영혼을 들볶을 때, 인간은 무지의 벽 앞에서 아파하고 허전함으로 인해 흐느끼게 된다.

종교는 왜 이다지도 많아야 하며, 무지한 선천종교의 신자들은 무엇 때문에 성전(聖戰)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채 원수처럼 싸우고 있는가?
나는 그 동안 학문의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대의 과학적 사고논리에만 깊이 젖어, 천지 대생명의 율동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상실함으로써 진리의 불감증 환자로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가슴아픈 사실이다.

그들의 정신을 열어주고 함께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이를 뼈아프게 체험하였다. 그런데 지난 1980년대에 이르러 신과학의 세계관이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단편적이고도 직선적인 묵은 세계관을 극복하고 우주의 근본과 생명의 본원을 통일적으로 보려는 안목과 사고가 생겨나, 21세기를 맞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욱 성숙해가고 있다. 이 우주에 대한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는 역시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증산도에서는 이러한 궁극적인 의문점을 우주의 창조원리 차원에서 처음 밝혀주고 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천지일월의 창조

우리가 바라보는 신비스러운 이 천지는 처음에 어떻게 열렸을까?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증산 상제님은 도통의 문을 열어주는 핵심 말씀을 주셨다.


‘천지가 간방(艮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 그것은 그릇된 말이요,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니라. (증산도 道典 6:83:3)

 

24방위에서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씀을 깊이 깨치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에서 주창되고 있는 우주창생론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근래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무(無)에서 탄생한 아기우주가 급격한 팽창(inflation)과 대폭발(Big Bang)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우주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 대폭발 후 우주에서는 불과 수십 분 만에 양자와 중성자가 융합하여 수소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생겨난 수소구름은 수십 억 년의 세월을 거쳐 장려한 일월과 뭇 별들을 광대한 공간에 수놓았다.(여기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증산도의 진리』 1장을 참고)

두 시간관 :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순환하는 시간

그러면 이렇게 우주자체의 변화성과 조화성으로 생겨난 천지일월은 어떻게 창조의 변화운동을 일으킬까? 여기에서 이 우주를 도도한 흐름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시간의 문제가 등장한다.
콜롬비아호가 취항한 1981년 4월 이후로 지구의 역사는 우주사 시대로 접어들었건만, 아직도 시간에 관한 한 원시적인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이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시간은 태초로부터 미래를 향해서 직선적으로 영원히 흘러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즉, 태초에 전능한 어떤 유일신이 혼돈의 우주로부터 이 세계를 창조한 이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인간이 생겨나고, 그 후 인간이 타락하여 극악무도한 말세가 되어 심판의 날이 임하고, 그 다음에는 꿈같은 낙원의 안식 세계가 영원 무궁토록 이 지상에 계속되리라는 ‘직선적(linear) 시간관’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일정한 변화원리를 따라 순환(circulation)함으로써 존재한다. 극미의 원자세계나 극대의 천체 운동이 모두 순환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운동을 이루어간다.

낮과 밤의 주기적인 교차, 사계절의 주기적인 순행(順行) 등등. 어디 그 뿐인가! 우리의 생명조차도 음양의 순환리듬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낮에는 동(動)하는 양기를 타고 무의식의 기반 위에 있는 의식의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황혼이 서서히 밀려와 이윽고 밤이 되면 대지에 짙게 드리우는 음기운을 타고 육신은 잠의 세계에 빠져들고, 마음의 날개는 무의식의 공간 속을 날아다닌다.

무의식이 체(體)이며, 의식은 무의식이 용(用)하는 차원이다. 즉, 우리의 영혼은 다음날을 위해서 밤에는 하룻동안 의식의 공간에 너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는 사연을 지워 버리면서─무의식 세계에 옮겨놓는─휴식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세계는 이렇게 크게는 ‘의식(낮) → 무의식(밤) → 의식(낮)’의 순으로 순환함으로써 생명활동을 영위해 나간다.

 

대우주는 생(生)우주적인 순환의 리듬(주기)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 순환의 주기성을 크게 둘로 구분해 보면, 전반기는 ‘창조 과정’ 그리고 후반기는 ‘성숙을 위한 재창조의 파괴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 전한 ‘예전의 하늘과 땅, 새 하늘과 새 땅’, 불교에서 겁(劫)으로 표현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우주의 순환 이야기나 미륵 천주님이 오실 때 ‘하늘의 별들이 바뀐다’는 대변국소식, 그리고 유교의 우주관과 『주역』, 『정역』의 역도(易道)에서 정립된 선·후천의 시간관은 모두 우주의 순환하는 변화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도 완벽한 순환적 시간관을 이야기한다. 우주는 4유가를 한 주기로 하여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데, 우리는 현재 이 네 유가 중에서 마지막 시기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또 브라만은
창조와 수렴(결실)을 하는데, 이를 하루로 치면 12시간은 창조하고 12시간은 퇴화(退化)하는 운동을 주기적으로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즉, 우주의 창조와 파괴가 시간의 순환을 통해 무한히 반복된다는 소식이다.

불교나 자이나교에서는 시간의 순환을 열두 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바퀴에 비유하고 있다. 또 구약의 에녹은 열두 천문을 통과하는 천체 운동에 의해 우주가 순환하는 모습을 천상에서 직접 보았다고 한다.

동서양 종교문화에 빈번히 나오는 12수를 주의 깊게 눈여겨 보라.
신의 창조 목적은 세속(俗)의 세계를 성(聖)의 세계로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던 엘리아데(M. Eliade)는, 동서양의 신화, 종교, 제의, 건축양식 등을 종합 검토하여 저술한 『우주와 역사』(일명 ‘영겁회귀의 신화’)라는 저서에서, ‘우주의 근본적인 변화리듬의 영원한 반복은 주기적인
파괴와 재창조(re-creation)’라 말하고,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일정한 시간의 끝[終]과 시작[始]에 대한 무의식적인 관념이 있으며, 이는 생우주적(bio-cosmic)인 리듬을 관찰하는 데서 기원하였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우주생명의 영원한 재생의 리듬 때문에, 우리의 마음과 생명도 새해를 맞을 때마다 과거의 종말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대우주 순환설을 대시간(Great Time)설이라 하였다.
독일의 신학자였던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 1884∼1976)은 『역사와 종말론』이라는 저서에서 “종말론이란 세계의 끝과 그 파멸에 관한 교리”라고 말하고, “서양역사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가진 종말론은 세계적 사건의 주기성(periodicity)이라는 생각에서 발생했으며,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의 과정을 자연계의 계절 순환으로부터 유추해서 성립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일년 사계절이 계속 순서대로 따라오듯이 세계의 과정에서도 ‘세계의 해’, ‘대세계년(大世界年)’이라는 사계절(우주의 일년)에 해당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동서 문명의 역사,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이슬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중국사상, 토인비와 슈펭글러의 역사철학 등 모든 순환론을 집대성한 그레이스 케언즈(Grace E. Cairns)는, 『역사철학』이라는 불멸의 저서에서 우주 순환의 최후 목적에 대한 총결론으로 다음의 한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인류와 다른 우주의 생물들에 대한 그러한 초역사적인 목표는 역사에 대해서 영혼의 해방이라는 목적을 부여한다. 인류는 지상에서 완전하게 된 사회질서에 가까이 인도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 (그리하여 인생의 섭리는) 우리가 절멸(絶滅)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보다 높은 차원의 영성(靈性)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신성(神聖)한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역사철학』, 443쪽, 459쪽)


이상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은 모두 동양문명에서 약 5,70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의 각고(刻苦) 끝에 정립된
선·후천에 대한 소식으로서, 천지가 인간과 만물을 화생하고 길러서 성숙시키는 천지 문명의 일회 주기(우주 일년)에 대한 메시지들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위대한 우주의 시(時)-간(間)(Time-Between), 즉
선·후천개벽 시간대의 대 교역점에서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불트만이 말했듯이 우리가 맛보고 있는 고통의 세계는 신의 저주가 아니라
시간의 속성에 휩쓸려 들어가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간의 정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시간의 흐름이 곧 우주조화신(造化神)의 얼굴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어떻게 영원에서 영원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우주 본체신(하나님)은 천지일월 속에 자신의 존재원리를 숨겨놓았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들은 시간 그 자체의 흐름을 통해 (변화의 진리자리를) 깨쳐야 한다.
구소련에서 가장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였던 니콜라이 코지레프 박사는 시간에 관한 신(新) 이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현대과학의 시간관이 동양 우주론의 시간관과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이 세계에 있어서의 생명의 원천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고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바로 시간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불가사의한 자연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시간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연결시키고 또 존재계의 모든 사물을 결부시키고 있다.

현대과학이 밝혀내었듯이, 우주의 조화생명[氣]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변화원리[理]의 흐름이 바로 시간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천지일월의 순환운동에 의해서 비로소 우리에게 인식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간의 속성과 시간의 흐름에 관련된 우주의 법칙을 알려면 반드시 천지일월의 운행법도를 깨쳐야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묶어서 말한다면, 시간이란 우주의 신(우주변화정신)이 현상계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켜 놓은 조화신의 자기얼굴이다.(‘본체=현상’의 일체관계를 생각해보라.)

 

시간의 흐름도 체(體)와 용(用)의 시간대로 흐른다

 

천지의 시간도 ‘어머니 시간[母時]’과 여기서 생성되는 ‘아들 시간[子時]’으로 구분되어 흘러간다. 즉 ‘시간은 시간을 낳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모든 시간의 모체가 되는 시간을 찾아낸 분은 『정역』을 지은 김일부 대성사이다. 그는 이를
원역(原易) 375도라고 정의했다.
원역은 천지의 순환 속에서
시간의 출발이 이루어지는 모체로서의 역할을 하는 근원 시간[母時]이다. 이러한 모체 시간은, 현실세계에서는 음양의 두 가지 시간을 창조의 궤도로 쓴다. 즉, 어머니 시간이 천지 속에서 작용(用)할 때는, ‘선천 윤역(閏易)’의 양의 시간대와 ‘후천 정역(正易)’의 음의 시간대라는 대칭적인 시간질서로 천지만물과 인간생명을 잡아 돌린다.

 

문명구조의 전환의 문제는 시간개벽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미래의 충격』이란 저서에서 현대문명의 거대한 변혁의 특성을 이렇게 전해 주고 있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의 혁명, 성(性)의 혁명, 인종의 혁명 그리고 가장 빠르고 심각한 기술상의 혁명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산업사회의 전반적인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초산업사회 혁명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혁명이란 새로운 사태를 뜻하는 것이다. 혁명은 수많은 개인의 생활에 신기한 사태를 가져다주고, 달라진 제도나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사람들을 몰아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제3의 문명’은 어떤 변혁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먼저 결론을 내린다면, 이것은 인류의 문명구조의 전환 문제이자 대우주의 창조섭리에 얽혀있는
세계개벽의 문제이다. 문화적, 사회적 차원뿐만 아니라 자연의 시간질서가 바뀌는 개벽문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해명될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혁의 총체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즉, 우주의 시간대가 순환하며 주기적으로 빚어내는 새로운 창조개벽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제3의 문명의 도래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것이다.
동서의 성자와 철인들이 예고하고 있는, 긴장되게 다가오고 있는 변국의 내용인 ‘새로운 사이클이 생기는 재조정의 시기’, ‘위대한 새 인종의 출현이 이루어지는 수정시대’, ‘일곱 번째 큰 수가 다 돌았을 때’, 또는 ‘황금의 사투르누스가 쇠로 변한다’는 이야기들은 모두 우주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한다는 천지 시간의 순환성을 암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주시간은 도대체 어떠한 원리로 순환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먼저 천지만물을 잡아 돌리는 조화기운[聖氣]이 작용하는
변화의 체(體)와 용(用)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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