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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황극경세서 어초문대 [1]

by 태을핵랑 2017. 12. 14.

황극경세서 어초문대 [1]

 

漁樵問對 [1]

 

 

*편의상 대화부분에서 고기잡이는 `漁` , 나무꾼은 `樵`로 표현했음.

 

■ 고기잡이가 이수伊水가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무꾼이 지나가다 짊어진 짐을 벗어 놓고 너럭바위 위에 앉아 쉬면서 고기잡이에게 물었다.

 

樵 : 고기는 좀 낚았습니까?

漁 : 예!"

 

樵 : 낚싯바늘에 미끼가 없어도 됩니까?

漁 : 안 됩니다. 낚이지 않습니다. 미끼는 물고기에게 먹음직스럽지만 해害를 줍니다. 사람은 물고기를 이롭게 하는 척하면서 날찍을 얻습니다. 그 이로움은 같지만 해로움은 다릅니다.

 

樵 : 외람되지만 쫌 여쭙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漁 : 당신은 나무꾼입니다. 나와 하는 바가 다르므로 어떻게 나의 일을 알겠습니까? 그러나 당신을 위해 말해 보겠습니다. 그대의 이익은 나의 이익과 같고 그대의 손해 또한 나의 손해와 같지만, 당신은 작은 것만 알 뿐 큰 것을 알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먹기에 이로우면 나 또한 먹기에 이롭고 물고기가 먹기에 해로우면 나 또한 먹기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물고기가 종일토록 먹을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미끼의 해로움은 크고 낚싯바늘의 해로움은 가볍습니다. 당신은 내가 종일토록 물고기를 잡는 것이 이롭다는 것만 알지 내가 종일토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처럼 나의 손해는 크지만 물고기의 손해는 적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로 사람의 한 번 먹거리를 해결하면 물고기의 손해가 크며, 사람의 한 몸으로 물고기의 한 번 끼닛거리를 해결한다면 사람의 손해 또한 큽니다. 또 큰 강이나 큰 바다에서 낚시질을 한다면 입장이 바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됨을 어찌 알겠습니까? 물고기는 물에서 유리하고 사람은 뭍에서 유리합니다. 물과 뭍은 다르지만 그 이로움은 똑같습니다. 물고기는 미끼 때문에 해害를 입고 사람은 재물 때문에 해害를 입습니다. 미끼와 재물은 다르지만 그 해로움은 똑같습니다. 다시 어떻게 저것과 이것을 꼭 나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체體를 말할 수 있지만 용用을 알지 못합니다.

 

樵 : 물고기를 날로 먹습니까?

漁 : 삶아 먹습니다.

 

樵 : 저의 땔감으로 당신의 물고기를 삶겠군요!

漁 : 그렇습니다.

 

樵 : 나는 쓸모가 그대에게 있음을 알겠습니다.

漁 :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땔감이 나의 물고기를 삶는 것만 알지 당신의 땔감이 나의 물고기를 어떻게 삶는 줄을 모릅니다. 땔감으로 물고기를 삶아 먹은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불이 땔감을 부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의 나무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그것만으론 어찌하지 못하겠지요!

 

樵 : 바라건대 그 도리를 듣고 싶습니다.

漁 : 불은 동動에서 생겨나고 물은 정靜에서 생겨납니다. 동정動靜은 상생相生하고 물과 불은 상식相息합니다. 물과 불은 용用이고 풀과 나무는 체體입니다. 용用은 이로움에서 생겨나고 체體는 해로움에서 생겨납니다. 이해利害는 정情에서 나타나고 체용體用은 성性에 숨습니다. 일성一性과 일정一情은 성인이 아울러 갖추고 있습니다. 당신의 땔감은 나의 물고기와 같습니다. 불이 없으면 모든 것이 썩어서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또한 사람의 몸을 기를 수 있겠습니까?

 

樵 : 불의 보람이 땔감보다 큼을 잘 알겠습니다. 사물을 잘 태우는데 꼭 땔감을 기다린 뒤에 태울 필요가 있습니까?

漁 : 땔감은 불의 체體이고 불은 땔감의 용用입니다. 불은 체體가 없으니 땔감을 기다린 뒤에야 체體가 있게 되고 땔감은 용用이 없으니 불을 기다린 뒤에야 용用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릇 체體를 가지고 있는 사물은 모두 불에 탑니다.

 

樵 : 물에도 체體가 있습니까?

漁 : 그렇습니다.

 

樵 : 불이 물을 태울 수 있습니까?

漁 : 불의 성질은 맞아들일 수는 있지만 따르지 못하므로 꺼져 버리고, 물의 형체는 따를 수는 있지만 맞아들이지 못하므로 뜨거워집니다. 그러므로 온천溫泉은 있으나 한화寒火는 없는데 상식相息을 말하는 것입니다.

 

樵 : 불의 도道는 용用에서 생기는데 이 또한 체體가 있는지요?

漁 : 불은 용用을 으뜸으로 삼고 체體를 버금으로 삼기 때문에 움직이고, 물은 체體를 으뜸으로 삼고 용用을 버금으로 삼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불에도 체體가 있고 물에도 용用이 있으므로 상제相濟하고 상식相息할 수 있습니다. 비단 물과 불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천하의 사물이 모두 그러한 것입니다. 용用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지요!

 

樵 : 용用에 대해서 들을 수 있습니까?

漁 : 뜻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성性이고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정情이며, 상상하여 구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형形이고 살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체體입니다. 용用은 만물을 오묘하게 말하는 것으로 뜻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 말로 전할 수 없습니다.

 

樵 : 말로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은 당신이 깨달아 알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漁 : 내가 깨달아 아는 바를 말로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비단 나만 말로 전해 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성인도 말로 알려 줄 수 없습니다.

 

樵 : 성인이 말로 전해 줄 수 없다면 육경六經은 성인의 말씀이 아니란 말입니까?

漁 : 때가 그러한 뒤에 말한것인 바 어찌 말이 있겠습니까!

 

樵 : (칭찬하며 말하였다) 하늘땅의 도道는 사람에게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고 만물의 도道는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으며, 여러 오묘한 도道는 신神에 갖추어져 있어 천하의 일을 끝마칠 수 있으니 또 무엇을 걱정하리오. 내가 지금 이후에야 마음으로 형形을 좇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대의 학문 근처에도 미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땔감을 쪼개어 물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역易에 대하여 의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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