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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코드/한민족 문화코드48

보천교 교주 차경석,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 항일운동 지원 보천교 교주 차경석, 제주도에서 가장 큰 규모 항일운동 지원 차경석, 제주도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 지원 일제는 1917년 4월 24일 차경석을 국권회복을 추구하고 배일사상을 가진 위험한 인물로 생각하여 '갑종 요시찰인물'로 분류하였다.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전국을 돌다 경상북도 영일군 출신의 김연일 등과 상의하여 1918년 9월 19일 제주도 법정사(法井寺)에 교도 약 30명을 소집하여 "왜놈은 우리 조선을 병합하고 우리 동포를 학대하고 가혹하게 다루니 실로 왜놈은 우리 조선민족의 원수다. 이제 국권을 회복함으로써 교도는 우선 도내 거주의 일본인 관리를 죽이고 일본인 상민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1918년 10월 6일 밤 김연일은 신도 33명을 소집하여 인근 각 면.이장들에.. 2017. 11. 20.
일제와 친일언론들,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매도 일제와 친일언론들,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사이비종교로 매도 일제는 1915년 8월에 조선총독부령으로 포교규칙을 선포하여 독립활동에 적극적인 민족종교를 유사종교단체로 분류하여 건전하지 못한 반사회적집단, 미신집단, 사이비종교단체로 규정했다. 언론도 일본 총독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해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및 사교와 같은 사회악의 존재로 취급하였다. 신문은 보천교를 비윤리적 반사회적 사상과 가르침을 펴는 미신, 사교집단으로 매도했다. 일제는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이나 민족운동과 같은 정치적 변혁을 꾀한다고 판단해 민중과 격리시키고 통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이비종교단체라는 올가미를 씌워 종교가 아닌 일반결사단체로 취급하여 '보안법', '집회취체에 관한 건'을 적용시켰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 2017. 11. 20.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가 강제 해산시킨거 아세요? 보천교와 민족종교를 일제가 강제 해산시킨거 아세요? 일제, 유사종교해산령 만들어 보천교와 민족종교 강제 해산시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일제는 한국의 민족성, 독립 등을 풍기는 모든 단체는 철저하게 해체시켰습니다. 그 정점은 1936년에 내린 '유사종교 해산령'입니다. 두 사람 이상의 집회가 금지되고, 1원 이상의 금전수합 역시 금지되었습니다. 유사종교 해산령에 따라 각도 경찰국은 종교시설물을 폐쇄시키고, 종교지도자들을 검거하는 등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1936년 6월 6일, 일경이 보천교 간부 24명을 연행하였고, 이틀 후에는 경찰 수십명이 밀어닥쳐 본소 성전의 제기와 일월상, 제단마저 전부 뜯어갔습니다. 6월 15일.. 2017. 11. 20.
한미동맹에 대한 민중의식은 보천교의 간태합덕에서 왔다 [VOD] 한미동맹, 보천교의 간태합덕에서 왔다 [VOD] 한미동맹에 대한 민중의식은 보천교의 간태합덕에서 왔다 보천교와 한미동맹 *영상출처: STB 상생방송 https://youtu.be/30Z3YqTF7wM 내 도수는 바둑판과 같으니라 1 상제님 일행이 서울에 도착하니 때마침 큰 눈이 내려 걷기조차 쉽지 않더라. 2 상제님께서 덕수궁 대한문(大漢門)과 원구단(圓丘壇) 사이의 광장에 가시어 성도들 중 네 명을 뽑아 사방위로 둘러앉히시고 그 한가운데에 앉으시어 말씀하시기를 3 “이곳이 중앙 오십토(中央五十土) 바둑판이니라.” 하시니라. 4 이 때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물으시기를 “공우야 쌀이 솥을 따르느냐, 솥이 쌀을 따르느냐?” 하시니 공우가 “쌀이 솥을 따르지요.” 하고 아뢰거늘 5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2017. 9. 7.